베냐민의 자루에서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지긋지긋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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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 곧 자신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아내로 인정하는 여자.
자신의 어머니가 받았던
모욕과 멸시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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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야곱의 아들들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받아야 했던 말할 수 없는 차별.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형들은 폭력적이었지만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야곱과 라헬의 가족은
꼴 보기도 싫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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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요셉을 처리했던 일은
분명 선을 세게 넘은 폭력이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에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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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식량의 문제 때문에
애굽의 총리 앞에서의 곤란했던 상황
다시 야곱을 설득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왔지만
왜 하필 베냐민의 자루에서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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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그리고 크게 틀리지 않는 지적이다.
베냐민 때문에, 지긋지긋한 라헬의 자식.
야곱의 고집만 아니었다면
그때 애굽을 다녀왔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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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다의 위대함을 여기서 발견한다.
형제들은 요셉의 일로 죄를 지었지만
십수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죄와
양식을 얻으러 애굽으로 간 일과의
연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베냐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총리의 은잔은 요셉의 의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유다는 연관성 없는 이 상황을
하나님과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의 죄악을
밝히셨습니다.'(창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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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는 허물이 발견된 베냐민을 애굽에 남기고
나머지 형제들을 풀어줄 것을 말했지만
유다는 자신이 종으로 남고
베냐민을 풀어줄 것을 구한다.
자신이 희생하고, 베냐민과 아버지를
살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앞서 야곱을 설득할 때도
형제를 대표했던 그는
애굽의 총리 앞에서도 가족을 대표한다.
대표는 곧 책임과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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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두고 떠났던 형들은
더 이상 라헬의 자식, 베냐민을
두고 떠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 선택은 베냐민과 아버지뿐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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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많은 선택이 있었다.
도망가는 선택도 있었고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하는 선택도 있었다.
침묵해야 하는 선택도,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 선택도
매일의 선택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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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믿사남 모임에서
이중첩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중첩자가 되어서
나를 변명하는 말을 하지 않은 채
양쪽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내가 너를 보냈고, 내가 이제 증인이 되어줄게.
잘 살았어.’
그러면. 정말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