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말이다.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네.’
며칠 전, 중요한 일 하나를 잘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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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최종 심사가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심사해야 할 논문들을
읽으려고 매일 가방에 넣고 다녔고
그 때문에 지하철역을 몇 번
지나쳐 내린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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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를 며칠 앞두고는
선생님 중 한 분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고
그래서 심사 당일에 병실과 화상회의로
만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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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평범하지 않는 경험,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진 시공간이었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한 축하연에서
긴장이 풀렸기 때문인지
진기한 경험 때문인지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 때문인지
내 마음이 묘하게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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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 식당에서 학생들은
들뜬 마음으로 연신 건배사를 외쳤고
내게 잔을 부딪혔다.
잔에 가득했던 보리차가 동나면
학생들은 웃으며 내 잔을 채워주었다.
물만 가득 마셨는데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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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수고했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올 초에 드렸던 기도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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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모두 크리스천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 경계의 밖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 빛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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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기도의 응답을 꿈꾸며
좌충우돌 같은 믿음의 실험을 했다.
(나중에 이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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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나는 그 경계의 안팎에 서있다.
내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기도의 응답 같은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면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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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져야 할 일도 많고
그래서 피로감과 두려움도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생각 때문에
비현실적인 찰나들을
감사한 시간과 경험이라고,
평범한 매일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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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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