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모임 마치고
비 내린 오난이네 놀이터에서
이렇게 저렇게 웃으며 재미나게 놀았답니다. ^^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얼마전에 개강한 오빠에게
다시 방학이 찾아온 것 같아서
우리 가족은 벌써 들떠 있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읽게 된 아주버님의 글 때문에
긴 시간, 무슨 돌을 옮길까 고민하게 됩니다.
정서적인 쉼을 가질까요? 영적 질서를 다시 세울까요?
어찌됐건 빨간날은 너무 좋습니다. ^^
– <산을 옮기는 사람은 작은 돌멩이부터 옮긴다. >
“빨간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면 강도도 막을 수 없다.”
1994년 뉴욕 시장으로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의 말이다. 당시 뉴욕시는 세계 최고라는 도시 이미지와는 달리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심각한 우범지역이었다. 역대 시장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그 누구도 뉴욕시를 ‘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로 만들지는 못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취임 직후 경찰국장과 손잡고 대대적인 범죄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그들이 제일 처음 손댄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살인이나 마약,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경범죄들이었다. 차 유리를 부수거나, 낙서를 하거나,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면서 강력한 처벌을 내린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강력범죄는 앞으로 더더욱 엄격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계속 전달했다. 처음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연간 2천 2백 건에 달하던 살인사건이 순식간에 1천 건 이상 감소한 것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이론이 있다. 1982년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자신들의 이론을 월간잡지 <애틀란타>에 발표하면서 명명한 범죄학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건물주인이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지나가는 아이들이나 행인들이 또 돌을 던져 그 유리창의 나머지 부분까지 모조리 깨뜨리고, 나아가 그 건물에서 절도나 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일어날 확률까지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깨진 유리창 하나가 무법천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홍보 마케팅 전문가인 마이클 레빈은 이를 기업경영에 접목시켜 <깨진 유리창 법칙>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성공은 치열한 경쟁이나 값비싼 홍보 마케팅과 원대한 비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작은 부분을 챙기는 데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즉 아주 사소해 보이는 기업의 깨진 유리창들(느린 홈페이지 로딩속도, 엉뚱하게 연결된 링크와 사라진 웹페이지, 더러운 화장실, 불친절한 매장 직원 등등)에 소홀할 경우 기업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범죄학 이론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년의 시절, 현실의 어려움을 핑계로 작은 타협과 불순종을 우습게보고 대충 대충 살아간다면 십년, 이십년 후 무서운 패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혹은 너무 어렵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큐티도 일주일에 한 두 번, 기도도 식기도 위주로만 하는 청년들이 겁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들의 미래가 심히 걱정이 된다. 사실, 하루 20-30분의 경건의 시간을 한 두 번 빼먹는 다고 집안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잘리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영적 침체가 금방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적 게으름은 사탄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공격방법임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나태하고 방만한 신앙생활의 끝은 후회와 탄식밖에 남지 않게 된다.
비록 작은 경건의 훈련이라도 하루하루 쌓아 가다보면 위대한 신앙의 영웅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산을 옮기는 사람은 작은 돌멩이부터 옮긴다는 중국 속담처럼 주님을 향한 작은 몸부림과 조그만 거룩의 연습이 모이다보면 때가 이르러 엄청난 영적인 에너지가 발산된다.
처음부터 영적 거장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주 0 일 이상 큐티하기, 매일 성경읽기에 한 번 도전해 보자. 혹은 매일 00 분 이상 기도하기, 새벽예배 참석하기 등의 목표부터 세워보자. 몇 달 뒤 자신도 모르게 훌쩍 성장해 있을 자화상을 그려보라.
무협소설에 나오는 ‘내공’ 가득한 무림의 고수처럼 ‘영성’ 가득한 신앙의 고수를 찾기 힘든 요즘이다. 바라기는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하나님의 의와 은혜로 평정할 영성의 대가들이 우리의 세대 가운데 배출되기를 소망해 본다.
– 글. 아주버님 www.prayNact.com
글. 온유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