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의 수많은 십자가 앞에 섰다.
이 땅에 밀알이 되어 주신 분들
눈발이 날리는 그 곳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 곳의 사계절을 찍고 싶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던 절망의 땅에서
바랄 수 없는 것 가운데 바라고, 취한 그 믿음을 상상해 본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도
여전한 절망이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속량만을 바라보던 이들(눅 2:38)
그리스도를 잉태했지만 떨쳐지지 않는 빈곤.
교회의 부패와 시대의 압제 속에
절망 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아기 예수 때문이다.
아기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무너지는 절망 앞에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내 안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만 기뻐하는 生
진정 소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