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 수 없는 사람

고칠 수 없는 사람

. 5분 소요

며칠 전 냉장고가 고장 났습니다.
그나마 날씨가 추워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고양이 조이를 키우고 있어서,
혹시 고양이 털이나 오래 쌓인 먼지가 엉켜
고장 난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
드라이버를 들고 냉장고 뒤뚜껑을 열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먼지가 가득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거의 십 년 만에 열어 본 뒤뚜껑이니
모든 것이 먼지에 뒤엉켜 있는 게 당연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먼지떨이와 청소기, 물수건을 동원해서
안쪽 공간을 닦아 냈습니다.
먼지구덩이였던 공간이 깨끗해지자 성취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냉장고를 고쳤구나. 내 방식대로 고쳤구나.'
그런데 다시 드라이버로 뒤뚜껑을 덮는데,
열 때는 보지 못했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쉽게 말하면 이런 말이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 뒤뚜껑은 절대로 열지 마시오."
불안한 마음으로 전원을 켜고 한참을 지켜봤습니다.
냉장고는 여전히 멈춰 있었습니다.
먼지만 털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지금도 냉장고가 왜 멈췄는지 알지 못합니다.
멈춘 냉장고 앞에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장 난 냉장고가 나와 닮아 있구나.
아무리 고쳐 봐도, 나는 왜 그대로일까.'
⠀
이것저것 고치면 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효율을 높이고, 조금 더 성실해지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내 안의 먼지를 털고 닦은 날이 많았습니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알게 됩니다.
내 안에 문제가 가득가득하다는 것을.
고장 난 곳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 냉장고를 만든 사람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 스스로를 고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
밧세바의 일을 덮으려고 다윗은
우리아를 집으로 불러들이고,
끝내 전쟁터 맨 앞으로 보냅니다.
자기 손으로 해결하려 애쓸수록 일은 더 엉켜 갑니다.
시편 51편은 선지자 나단이 찾아온 뒤에 드린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
여기서 '창조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바라'는
창세기 첫 절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실 때 쓰인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 동사가 '창조하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
그 주어는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마음을 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마음을 고칠 수 있는 분은 마음을 지으신 분뿐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
어쩌면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은
스스로 고쳐 보겠다고 다 뜯어 놓은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나는 나를 고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내 능력으로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무능력해 보이는 고백이지만,
그렇게 고백을 하고 나서야 숨이 쉬어집니다.
⠀
냉장고 뒤뚜껑의 문구를 다시 떠올립니다.
내 마음에도 그런 문구를 붙여 놓으려 합니다.
지으신 분이 아니라면 고칠 수 없다고.
내가 열어 놓은 뚜껑을 들고,
열린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섭니다.
⠀
주님, 상한 내 마음을 새롭게 지어 주세요.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덮어 주세요.
⠀
⠀

<노래하는풍경 #1644>
⠀
#고장난냉장고 #고칠수없는사람 #시편51편

1: 2025.08.23 18:49 / 2: 2025.08.28 16:05 / 3: 2026.11.03 18:5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