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자다가 잠이 깨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꽤 오랫동안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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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심 있는 사람들보다
서성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열심 있고 흥미가 많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의 관심으로 기어코 무언가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어떤 일로 상처와 아픔을 겪었거나 잘못된 전제 때문에
가던 길에서 멈춰 선 사람은 회의감에 주변을 맴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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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간혹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면 새로운 걸음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노트에 적어 두곤 합니다.
그 기록이 있으면 서성이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온라인에 콘텐츠를 남기는 것도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출판한 책들을 종종 절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내게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나누라고 말씀하셨지만, 종종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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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에서 통독학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사기를 읽으며 예전에 밑줄 그어 놓은 구절들을 다시 읽게 됩니다.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이
그 땅의 주민을 '쫓아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거듭 나옵니다.
나도 땅을 분배받았지만
여러 이유를 대며 싸움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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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지 않으려고,
혹은 후회할까 봐 발끝에 선을 긋고 한 걸음도 떼지 않는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걸음을 내디디며
시행착오를 겪는 쪽이 낫다고
나 자신에게 자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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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실 내가 그 반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을 때
오히려 더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미 벌여 놓은 일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다른 데 관심 두지 말고 내 자리에 서 있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입니다.
나는 그것을 신중함이라 불러 왔지만,
어쩌면 두려움에 붙인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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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마음에게 보라는 듯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아무 결실이 없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도
이것저것 수고하라고. 일상을 기록하고 사람을 만나라고.
그 시간을 통해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라고.'
내 기질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문장들은 나와 다투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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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억지로 몸을 움직였더니
신기하게 흥미가 생기기도 합니다.
언젠가 책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습니다.
여행을 할까 말까 고민만 하면 영원히 떠나지 못할지 모르지만,
좋든 싫든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서면 그때부터 여행은 시작된다고.
그 순간부터 '책임질 수 있을까'를 묻던 마음은
'어떻게 해 나갈까'를 묻기 시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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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고민하는 밤입니다.
어쩌면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도
서성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끝에 그은 선 앞에서 서성이는 내가,
서성이는 누군가에게 한 걸음 내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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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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