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
차례차례 기도 제목을 물었습니다.
내 차례에 ‘거듭남’을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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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이라고 답한 이유는
앞서 대답한 친구와 기도 제목이
겹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몇 개의 단어를 생각했다가
그중 하나를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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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두었던 몇 개의 기도 제목을
포함해서 거듭남에 대한
의미 또한 알지 못했습니다.
뜻도 모르지만 익숙한 종교적 용어를
적절하게 꺼내 사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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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시간이 가끔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언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까?
교회 문화에서 자랐지만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된 시간은
훨씬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머물렀던 중요한 이유는
교회 문화와 친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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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친구들과 기독교 서점을 구경하거나
화요일에는 찬양집회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삶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통성기도를 통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주보의 빈 공간을 채워 넣기도 하고
습관처럼 기도실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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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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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을 따지는 시대를 살아가며
다음 세대를 고민합니다.
수련회 기간은 점점 짧아져 갑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발을 동동거리며
결론을 묻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과정이 생략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미나고 자극적인 미디어가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도 가성비를
묻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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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이지 않고 관계적인 사랑,
인격적인 사귐의 시간에는
기다림이라는 소모적인 시간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실용적인 사람이
소모적인 시간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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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간
내가 무력함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실용을 따지며 발버둥 치지만
더 나은 수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
도망갈 구멍 하나 찾기 힘들 때,
오직 하나님만 남게 될 때,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될 때 철저하게 무력한 시간은
구원의 시간이며, 사랑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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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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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할수없는 #무력한시간을통해서라도
#주님만나기를 #구원의시간 #사랑의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