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진 거리위로
굽은 허리 하나가 보인다. 낯익다.
내가 하는 작업의 동기를 갖게 한 할머니의 등이다.
기독교적인 경향성을 꼭 드러내야만 하는가.
고민하던 어느 날, 가장 추운 어느 겨울날. 저 등을 만났다.
그의 느린 걸음을 따라가며
사마리아에 대해 생각했다.
굽은 허리의 추운 노모에게 다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것이
지금 나의 사마리아에 한 발 내딪는 걸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누구랑 사세요?
예수님과 살아요.
할머니의 대답은 단번에 내 작업의 한 축이 되었다.
그 경향성을 배제해서는 도저히 만질 수 없는 사람들.
마치 천국의 야생화처럼 그럼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디서 피었다 지는지 몰라 이 세상에 무명한 자 같지만
천국의 유명한 자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원래대로 기웃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발걸음과는 다를 것이다.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