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rt Blog:
  • All
  • nature
  • people
  • still object

은혜

가끔 내 생을
하얗게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보다 성공하기 위해
판을 다시 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내 추한 삶의 그림이
내 생이 너무 부끄러워
추한 그림 위에 더 이상 덧칠하는 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오점 하나 없는 새하얀 흰 캔버스 위에
다시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픈 소원 때문이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다.
정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은혜가 아닌가..
그 감격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진실과 맞닿을 때 실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아도..
내 생의 그림은
날마다 새하얀 캔버스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 은혜를 알면 알수록
나는 은혜에 감격해서
이렇게 더더욱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화

생을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만화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만화 속 주인공이야.
주인공이 이같은 고난쯤이야.
주인공이 이만한 손해쯤이야.
만화가 재밌을려면 이정도 눈물쯤은 흘려줘야지.
하지만 이렇게 일어서는 모습.
이만한 아픔에도 웃어주는 센스.
하늘 향해 손 흔들어주는 여유.

딸기

조금전, 호리에 형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형의 약혼녀, 메구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예상대로 울먹이는 목소리다.
어머니를 만난지 몇 번 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어머니마냥..

지난 번, 약혼식 때 어머니는 메구미를 보며
너무 귀한 며느리를 얻었다며 흐뭇해 하셨는데..
이번에 후쿠오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온 게 감사하다.
어머니가 내주신 딸기맛이 생각난다.

호리에형의 목소리는 비교적 밝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질 않는단다.
오랜 병환으로 어느정도 예상도 했겠지만..
..
어머니의 빈자리는
떠나고 난 뒤에 가장 절절할 것 같다.

겟세마네동산

‘피로 덮지 않으면 모두 죄인으로 본다..’

유월절 그 날 밤,
엄위하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그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를 위한 표적이 될 것이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passover,유월)..

겟세마네동산.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그 애씀의 기도는 땀구멍에서 실제로 피가 흘러나올 수 있다고 어느 학자가 말한 것을 보았다.
당신은 자신의 몸을 찢어
그 피로 나를 덮기 위해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의 간구를 드린 것이다.
중세 암흑시대, 이어진 많은 세월동안
많은 신학자들과 믿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핍박했다.
이유는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것이 죄목이다.
하지만 과연 예수님을 누가 죽였는가..
주님은 열두영(레기온)도 더 되는 영으로 당신을 보호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란 말인가?

아.. 예수님은 스스로 도살장으로 걸어가셨다.
세례요한은 요단강가로 나오는 그 분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광야

||1

이스라엘의 여러 곳이 소중했지만
내가 잊을 수 없는 하나는
광야. 그리고 그 곳의 바람이야.
차에서 내리는 순간,
뜨거운 열풍이 불어와 내 몸의 땀 한 방울 남김없이 핥아 버렸단다.
끝없이 이어진 유대 광야 위에
나 홀로 서 있을 때
거기에는 절망이 가득해 보였어.
그리고 하나님 한 분밖에 보이지 않더구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없다면 결코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인생 길을 보게 되었단다.
사람은 믿음대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겠지.

광야를 사진으로 찍었어.
그 사진을 보며 매 번 다짐하겠지.
보이는 것이 많은, 유혹이 너무도 많은 이 세상에
흙으로 돌아갈 것인가. (창세기에 뱀은 흙을 먹고 살 것이라 말했다.)
하늘을 바라보고 생명을 살아낼 것인가..

시선

어둑해진 거리위로
굽은 허리 하나가 보인다. 낯익다.
내가 하는 작업의 동기를 갖게 한 할머니의 등이다.
기독교적인 경향성을 꼭 드러내야만 하는가.
고민하던 어느 날, 가장 추운 어느 겨울날. 저 등을 만났다.
그의 느린 걸음을 따라가며
사마리아에 대해 생각했다.
굽은 허리의 추운 노모에게 다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것이
지금 나의 사마리아에 한 발 내딪는 걸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누구랑 사세요?
예수님과 살아요.

할머니의 대답은 단번에 내 작업의 한 축이 되었다.
그 경향성을 배제해서는 도저히 만질 수 없는 사람들.
마치 천국의 야생화처럼 그럼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디서 피었다 지는지 몰라 이 세상에 무명한 자 같지만
천국의 유명한 자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원래대로 기웃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발걸음과는 다를 것이다.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하늘 정원

방금 꽃 화분 하나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이 놈은 꽃도 예쁘지만
꽃이 지고난 뒤
빨간 열매가 맺히거든요.
그게 더 예뻐요.”
라고 꽃집 아줌마가 말씀하셨답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햇볕 드는 집에 살게 되었네요.
저와 함께 햇볕 받으며 자랄 친구예요.

한 달이 넘도록 우리집, 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제 밤늦게 주인아저씨가  술에 취해 창문을 노크했답니다.
수중에 가진 돈도 없고, 여러 비관적 상황 때문에
늘 술에 취해 계십니다.
물 떨어지는 제 방을 제대로 고쳐주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나 봅니다.
“죽기 전에 내가 꼭 고쳐줄게.”
말은 웃기지만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건 빨리 주무시고 아침에 얘기하자고 말했더니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잠자리 같고, 깃털 같은 녀석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하늘이 너를 기르시는구나.”

이른 아침, 잠결에 받은 전화인데
하루 종일 기억에서 맴맴 돕니다.
나를 아침부터 노래하게 만듭니다.

놀부같이 생긴 이 아저씨는
생긴것처럼 성격도 까탈스럽고 별납니다.
그런 아저씨가 요즘 변하고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
이 사람의 외로움을 내가 만져 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저, 얘기 상대가 되어 준 것 밖에 없는데
아저씨는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친구가 되어 갑니다.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돼?”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에요?”
“그래. 네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야.”
“말씀해 보세요. ”
“아침 꼭 챙겨 먹어. 이 녀석아.”

나중에 시간나면 아들과
가족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부탁일 줄 알았는데
아침 챙겨먹으란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요즘도 밤새 술 마시는지..
요리학원에는 잘 나가고 계시는지..
아빠랑 빼닮은 개구쟁이 아들 녀석은 잘 지내고 있는지

따사로운 햇볕 아래
꽃이 피고, 지고 귀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바람부는 정원 아래서 천국의 야생화가 가득할 때까지
하늘은 비내리고, 우리는 이렇게 자라납니다.

오사카 부흥

||1

친구

제주도에서 일정을 위해 차를 몰고 가던 중
아내가 “말이다! 말!!”
하도 소리치며 반가워 하길래
차를 세워졌더니,
마구 달려가서는
말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십분이 넘게 말을 쓰다듬고,
먹을 것을 나눠먹고 – 슈크림 빵을 나눠주는 아내나, 받아 먹는 말이나..
어느새 두 녀석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말의 눈이 너무 예쁘다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말의 털을 쓰다듬으며, 벌레를 쫒아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같은 아내의 모습을 지켜 보며
순진한 녀석이라며 계속 웃게 됩니다.
아내는 제주도가 처음이라
제가 데리고 간 곳마다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학생시절 방학 때는 뭘했냐며 물었더니
일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아내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떡집에서 떡을 떼다가 길에서 팔기도 하고,
빵모자를 쓰고 빵공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나는 아내의 그 시간을 상상해봅니다.

제주도 여행 내내, 길에서 만났던 말 이야기를 하며 그리워하는
제 아내는 참 순진합니다..
얼마전 처형이 말해줬습니다.
아내가 고 3 때까지도 호랑이와 사자를 잘 못 알고 있었다고.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지경이었습니다.. 하하.
아내는 그렇게 순진하고, 단순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기를 참 잘합니다.

제주도 일정의 마지막 날,
제주도에 사는 한 명이 우리 숙소를 찾아와 기도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그 친구가 눈물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며 아파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휴가기간인데, 아픈 이들과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사자와 호랑이를 아는 것보다
함께 울고 웃을 줄 아는 것이 더 복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의 바보스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저는 이 녀석이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예루살렘

예수님이 습관을 쫒아 기도하셨듯,
이스라엘에서의 아침.
성전터를 걸어다니며 기도했다.

지금의 4차로는 될법한 고대 로마의 도시.
예루살렘의 거대한 성전돌. 하나가 4톤이 되는 것도 있단다.
현대에 보수한 성벽보다 더 견고하고 거대한 건축물들이다.
하지만 당시의 문화들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열심이었다.

상인들이 철수한 이 아침에도 그들의 기도는 뜨거웠다.
아침 일찍 시작한 기도가 아니라,
밤이 새도록 아직 그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율법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은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의 진정성 때문이다.

나는 도저히 율법의 의로 이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가발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도 볼 수 있었는데
남편으로 부터 여성으로의 매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삭발을 했단다.
그로 인해 남편이 더욱 말씀에 깊이 몰두할 수 있게 하도록..

‘율법의 의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아침의 산책만으로 내가 누리는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