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115

당신을
알면 알수록

내가 당신 앞에
나아갈 수 없는
한없이 누추한 자임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 때문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됩니다.

나는 내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만나지만
당신은 나의 미래를 보고 오늘을 만나겠지요..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5]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주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믿으면서도
자신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그분을 마을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었다.
많은 돼지떼 보다 못한 한 영혼의 값.

하지만 주님에게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4]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3

금은 불을 두려워 않는다.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주님.
상황 앞에 주님의 사랑을 저울질해서는 안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3]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은 죽으셨다.
그리고 완전히 죽으셨다.
십자가형은 고문과 같아서
숨을 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다리를 이용해서 몸을 올려 숨을 쉬려 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에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고 싶지 않았기에
빌라도에게 시체의 다리를 꺽어서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산 사람을 십자가에서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양옆 죄인들의 다리를 꺽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다. 그가 찔린 옆구리의 피와 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말씀을 성취하셨다.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출12:46)
유월절 규례다.
그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2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해와 달과 비교한다.
빛나는 해. 마저도 그 비췸이 쓸데없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분은.
내가 소망하고 있는 분은 그런 분이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2]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0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사람 같다고 여기는 아이야.

너로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으셔서
그동안 커다란 벽 같은 절망의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겠다.

목이 말라 갈증으로 혀가 마를 때도
네 앞에 강을 열고 마른 땅을 샘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광야에 백향목과 여러 나무들이 자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사 41 :14~2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9

가리어진 것을 깨닫는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투명한 은혜 가운데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사는 삶이다.
그것을 위해 비본질은 조금 버려져도 된다.
사단은 그 역을 말한다.
비본질을 위해 본질을 내려놓으라고..
본질을 향하는 사랑의 고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경작해 나가는 일이다.
하나님, 오직 당신의 은혜 아래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9]

 

?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8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한다.
하지만, 기도를 멈추게 되면 영의 호흡이 멈추게 된다.
사단은 미혹한다.
자유하고 쉬라고..
그렇게 쉬다 보면 편하지만
평강과 편함은 다른 것이다.
과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7

우리는 감정으로 기도하기를 즐긴다.
그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울음이 없어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에 집중되지 않아도 믿음의 의지가 있다.
“하나님, 이 기도를 당신의 뜻대로 사용해 주세요.”

밭 가는 농부가 하루 종일 땀을 흘려도
지나간 자리는 그저 땅이 패였을 뿐
생명의 흔적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땀 흘린 수고 아래,
보이지 않는 영역에 이미 생명이 태동(胎動) 되고 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