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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의 만남

75세 때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후 용기 있는 선택과 기도와 전쟁,
또한 여러 실수를 경험하며 24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라와 하갈의 반목과  인간적인 실수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십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주님은 더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못할거라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을 마치 빌보 배긴스가 지난날을 추억하는것처럼 살지 않았을까요?
내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나와 관계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지난 24년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사를 약속하셨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는 약속을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속에
아브라함의 회의와 조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창17:18)

하나님은 13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좀처럼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던 약속들이 보다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과 실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어느새 아브라함은 죽을 때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 또한 경수가 끊어져서 현실적으로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네가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긴장 하나 없이 단순하고도 지루하게 세월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기전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만 할 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그런 방식을 택하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우리 삶의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주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실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수면위에 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내가 다 만지지 못하는 시간조차도,
당신은 한 번도 그 계획을 거둔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당신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론 비이성적이고,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나를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이런 나를 왜, 이토록 기다려 주실까?
이런 나를 택하여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나를 넘어서 이 시대의 답답한 현실 앞에 주님은 과연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내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며,
주님은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주님의 그 완전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완전함에 부끄러움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여기서 완전이란 말로 사용된 ‘타밍’이란 단어의 의미는
흠없는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온전함과 완성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단순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한 투쟁도 아닙니다.
그것은 얻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 그 자체도 우리의 완성이나 온전함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로 기뻐해야 하지만, 먼저는 주님 그 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마치 질그릇에 담겨 있는 보배처럼
질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보배가 너무 귀한 것처럼
전혀 온전해 보이지 않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그런 단어를 허락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 거하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왕이신 주님으로 내 마음에 모신다면,

동화같은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뜻밖의 웃음이 가득합니다.
“얘들아,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뜨렸을까?”
“저는 아니예요. 소명아 너가 그랬니?”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누나가 그랬어.”
“난 아냐. 소명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
그러면 야단맞지 않거나, 덜 야단맞을 수 있어.”
그렇게 둘이서 토닥거리며 장난치다가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다 보면
그 속에 작은 보석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있잖아요. 하나님은 무서운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으응.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하나님은 무서워요.
죄를 지으면 무서우시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좋으신 것 같아.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잖아.”
혼자서 종알거리는 온유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누나 옆에서 말을 주워 받은 소명이가 이야기를 거듭니다.
“아빠, 저도 하나님이 무서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좋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친구잖아요. 히히히”

온유와 소명이의 기도

연말이 되면 여러 작업들 때문에
본의아니게 아이들이 방치됩니다.
그래서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부터 순서대로 돌아가며 함께 기도하곤 합니다.
어른들의 기도가 끝나고
아이들의 순서가 되면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됩니다.
기도의 내용을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고
때로는 마음을 쿵쾅거릴만큼
놀라운 믿음의 선포로 들릴때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온유는 엄마에게 자주 공약을 합니다.
자기가 어른이 되면 시집도 안 가고
엄마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겠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는 건 궁금하지만
자기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늙어간다는게
그렇게 싫은 모양입니다.
요즘 기도할적마다 엄마 아빠 안 늙게 해달라는 기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될때까지 더 잘하게 해주세요.”
온유 누나의 기도를 듣고는
소명이가 기도할 때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라나길 원하는 모습을 말해주는 것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유의 기도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져서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면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
얼굴과 얼굴로 볼 수 있겠지요.

http://lovenphoto.com/wp-content/uploads/2015/12/pray2.mp3

“우리 가족이 안 아프게 해주시고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우리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안되게 해주시고
우리 가족이 힘들고 지치고 병들지 않게 해주세요.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이 될때까지 더 기도를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이 기도하는 것 잊지 않게 해주시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한테만 기도하고
우상한테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 많이 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지게 해주세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말씀들을 때 장난 안치게 해주세요.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누나 나랑 축복하는 마음만,
사람하는 마음만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하나님 사랑하고
믿고, 축복하게 해주시고
많이 기도하게 해주시고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엄마와 아빠, 누나와 기도할 때
장난치지 않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말 듣게 해주시고
누나와 나랑 싸우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밥 안에 뭐가 들었지?

아침에 외출준비로 급할 때
우리집은 늘 볶음밥을 만들어 먹습니다.

아내는 이런 급한 상황을 대비해서
값이 살 때 마트에서 야채를 사놓았다가
호박, 당근, 파프리카를 잘게 썰어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습니다.
그러면 후다닥 후라이팬에 마늘과 양파를 볶고, 냉동실 친구들을 꺼내 볶고,
밥과 계란을 마저 볶으면 완성입니다.

“엄마, 이 밥 안에는 뭐가 들었어?”
“움. 호박이랑 파프리카”
“아니, 밥에 뭐가 들어있냐구.”
“음. 당근이랑 멸치도 들어갔지.”
“아닌것 같은데?.”
“온유야 맞아. 봐봐, 빨간색이 당근이구, 이건 파프리카야, 이건 호박이구.”
“아닌데..”
“그게 아니면 밥에 뭐가 있는데?”
“밥 안에는 탄수화물이 있는거 아냐?
내 말이 맞지?”

“하..그.그래. 그렇지..”

사랑이라

<아직도 가야할 길>을 쓴 스캇펙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고해다.
하지만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에게는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문제는 우리에게 용기와 지혜를 요구할 뿐 아니라
없던 용기와 지혜를 만들기도 한다.
마치 아이들에게 일부러 문제를 내주고 풀어 보도록 하는 것과 같다.
문제를 피하려고 하면 바로 그 고통보다 피하려고 하는 마음때문에 사실은 더 고통스러워진다.

이 고통을 이겨 내는 슬기로운 기술을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이다.
고통을 먼저 겪은 뒤 즐거움을 갖게 되면 그 즐거움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12살 아이가 숙제를 먼저 해치운 다음 놀러 나가는 것처럼.

스캇펙은 이렇게 하는 방법이 절대로 복잡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열 살 정도의 아이들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나 권세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 때문인데
그는 이 의지를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

공경의 첫 걸음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세 아들의 이야기를
성경이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함과 같은 자녀가, 노아와 같은 아버지가 이후로도 많았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홍수심판이후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첫번째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이야기는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을 조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갯벌같은 세상에서
노아와 자손들은 농사를 시작했고
생육하고 번성할 것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따라 놀랍게도 포도나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 열매를 먹고 취하여 장막 안에 벌거벗은 아버지의 하체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저 지나치며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적 표현으로는 관찰하고,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함은 자신의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알렸습니다.

홍수심판은 죄악이 관영했던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탁월한 의로움이 그를 구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이후 행적과 벌거벗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벌거벗음을 가리려고 옷을 입은 것과는 반대로
노아는 벌거벗었습니다.
여기서 노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죄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으며,
함을 비롯한 그 가정 또한 이 문제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죄를 같은 선상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분명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특별한 죄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을 향해서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소리쳤습니다.
또한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음행하는 이를 향해 평화의 창을 던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함이 아버지를 향해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취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함과는 비교될만큼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에 대해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셈과 야벳은 놀라울만한 축복의 예언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때에 대해 경고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부모를 거역한단다..” (딤후3:1-2)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음행과 폭행과 같은 죄악에 대해서는 충분히 심각성을 인식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결과로써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27:16)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고르반_ 하나님께 드릴것이라고 말하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라도 거절할 수 있다.-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로 사역에 대한 무게는 싣지만
그 말로써,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변명을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고르반이라는 말처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로, 마땅히 부모에게 드릴 것에 대해 거절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부모님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 사랑한다는 말을 바라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옳은 일입니다.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입니다.
그 약속은 ‘네가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 할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엡6:1-3)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 중 하나는
먼저 용서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 많은 분들이 부모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기계적으로 완전하게 제하여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주님의 놀라운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 아픔의 깊이가 깊을 수록 그렇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왕이 되시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그 아픔은 나를 찌르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도구로 나를 드리기 위한 시작으로 용서를 말하고 싶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아래의 글을 입술로 소리내며 기도해주세요.

“주님, 우리 부모님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부모님의 지난 과오를 생각합니다.
노아가 벌거벗어 지은 죄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으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은 것처럼
내 부모들의 벌거벗음을 주님께서 입히신 새 옷으로 덮길 원합니다.
이제 그들의 과오에 대해 비난하려고 관찰하고 주목하는 일을 멈추겠습니다.

나는 오늘 그들을 용서하길 원합니다.
내 이성으로도, 내 감정으로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왕으로 계신 주님의 마음에 순종함으로 그들을 용서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일하세요.
내 안에, 그들안에서 주님 일하세요.
왕으로 일하여 주세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움

약속했던 원고를 미루고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책상에  앉았습니다.
제가 집중할 수 있도록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외출했습니다.
촬영을 제외하면 늘 함께 였는데
오랜만에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온유는 방문을 쾅. 하고 열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긴 내 놀이터다!”
“아니라니까, 온유야, 여긴 아빠가 작업하는 곳이야.”
“아니다. 여긴 우리 놀이터다! 으하하하!”
그러면 온유 뒤에서 소명이가 씨익 웃으며 등장합니다.
소명이는 프린트 버튼을 마구 눌러대고,
온유는 아빠가 앉은 의자를 흔들고 빙글 돌립니다.
정말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엄마가 정의의 사도처럼 나타나서는 두 아이를 끌고 방을 나갑니다.

그네 들이 떠나가고
조용해진 방에서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습니다.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조용한 공간을 그리워했지만
그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더 그립습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온유가 짠. 하고 나타날 것 같습니다.
“여긴 내 놀이터다!”

우리 딸, 온유
종이비행기 타고 잠깐 날아와
아빠가 앉은 의자를 흔들어 주지 않겠니?

언젠가, 주님과 함께 하던 시간이
만져지지 않을 때
그 시간을 얼마나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다른 어떤 결핍도 감당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함께 할 때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빈 자리를 통해 더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온유가 소명에게

택배 박스 안에서
온유가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가만히 듣다가 빵. 터졌습니다. ㅎㅎ

“뭐야 이소명!
너 누나가 아기일 때
왜 엄마 뱃속에서 빨리 안 나왔어!
너가 안 나와서 누나는 놀 사람이 없었잖아.
그동안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왜 빨리 안 나왔어!
이런 개구쟁이 녀석 같으니라구”

_ 네살 온유가 두살 소명에게

꼭 해야 할 일들

아내가 보내준 사진이예요.
어젯밤에 기도하는데,
온유와 소명이가 양쪽에 달라 붙어서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아내가 사진찍었다고 해요.

온유는 온유대로 자신의 기도를 하고,
소명이는 아빠 기도를 흉내내며
기도반, 장난반 해가며 무릎꿇었습니다.
어떻게 기도했는지
세 명이서 나란히 허리살 빼꼼히 보이는 사진을 보며 얼마나 웃기던지요.

밀려있는 일이 많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라는 말은 자기경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변명이라지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지만
그 일 때문에 가끔 우리 아이들이 뒷전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절박감도 생깁니다.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자상한 아빠는 아니지만,
잠자리에 누운 온유의 수다를 가만히 들어 주었습니다.

아빠 하늘색 하면 무슨 생각이 나?

아이들은 내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자동판매기처럼 답하지 않습니다.
“온유야, 어제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의 일상을 물어 보아도
자신들의 관심에 집중되어
내 질문에 단답으로 끝나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는 자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끝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당장 할 일 많은 아빠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그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뤄야 할까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지금이 아니면 그 무한한 상상력을 언제 엿볼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그래서인지 꼭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갑니다.
내게는 정말 시간이 부족합니다.
잠을 줄여서라도 꼭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두번째 투웬티 당첨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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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작품을 가진 사람이
가까운 친구, 혹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
문득 생각나는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주면 어떨까?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한 것처럼
그 사람도 가까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그렇게 이어진다면,
내가 꿈꾸며 이름붙였던 ‘투웬티 프로젝트.’처럼
정말 20년동안 작품 스스로가 홀로 여행하며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내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의 것이 되는 것,”
 
투웬티프로젝트의 내용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프로젝트에 당첨된 분들부터 소개해 드릴게요.
성함 뒤의 괄호부분은 연락처의 뒷부분입니다.
이슬(2823)
유성지(9347)
이사라(4806)
이슬기(1784)
쿄토임마누엘(8600)
유승우(1976)
 
축하드려요. ㅎㅎ
3주일안에 전달이 안되면 다음 사람에게 기회를 넘기겠습니다아.
 
<투웬티> 프로젝트는 20년간
작품 스스로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하며
그 작품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작품을 통해서 그 나라를 위해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어떤 조건이나 용도제한을 두지 않고 무상으로 작품을 빌려드립니다.
개인이나 기업, 단체나 교회이든 상관없습니다.
집안 거실이나 가게, 기업 인테리어용으로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사진을 걸어두고 그것을 볼 때마다 기도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작품이 있는 곳으로 가지러 와주세요.
(저희집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입니다.
/ 주일마다 복정역에 있는 선한목자교회서도 가능합니다.
평일은 맛있는 커피를 사주신다면,
서현역, 판교역부근에서 전달할 수 있을지도..)
 
2.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인증샷을 메일로 부탁드릴게요.
(핸드폰이어도 무방합니다.)
 
3. 3개월동안 전시한 후에 마음에 떠오르는 친구에게 작품을 선물해주세요.
 
4. 친구에게 투웬티 프로젝트에 대한 의미와 함께
반드시 3개월뒤 그 다음 친구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명해주세요.
 
5. 친구에게도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인증샷을 이메일로 부탁해주세요.
 
6. 다음에 전달받을 사람을 위해서라도
작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써주세요.
3개월 뒤, 다음 사람에게 작품을 전달할때는
전해주는 사람이 에어폼으로 작품이 다치지 않도록 감싸주세요.
 
7. 무상으로 작품을 내어드리는 댓가는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8. 인증샷 및 문의사항은 메일로 주세요. (eoten77@hanmail.net)
 
* 매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후 제작한 작품6개를
신청하신 순서를 따라 나누어 드립니다.
아래는 신청서 양식입니다.
https://josephlee1.typeform.com/to/FNegg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