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그 적기를 동물적 감각으로
읽는 사람들.
감이 좋고 촉이 빠른 사람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서
기가 막힌 결정으로 승리를 이끈다.
사울은 전쟁의 냄새를 아는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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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람들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게다가 당시 이스라엘은
철공이 없어서 칼과 창은 오직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었다. (삼상13:22)
블레셋과의 전투가
쉽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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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안 기다렸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않자, 사울은 스스로 번제를 드렸다.
희생 제사는
사기가 떨어진 군대를
다시 결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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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사는 사람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수단인가?
예배는 사람들에게
딴마음을 품지 않도록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예배. 하나님과의 사귐과 경배가 목적인가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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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생존 사이의
긴장관계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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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결과로써
사무엘을 기다리느라
제사를 드리지 못한 채
전쟁에 패하였다면
이후 사울 왕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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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과의 전투 후에는
사무엘의 호된 질책과
이 나라가 사울에게서
길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까지 듣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요나단의 영웅적인 모습으로
승리를 얻게 되었다.
그 후로도 사울 왕은 용감하게 싸웠고
향하는 곳마다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이스라엘을 구원해냈다. (삼상14: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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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촉이 빠른 사람이었다.
이기는 방식에서 손해 보거나
물러설 마음이 전혀 없다.
그래서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되
좋은 상품들 앞에서 주저했다. (삼상15:9)
사무엘이 자신을 떠나려 할 때
겉옷 자락을 찢어질 정도로
붙잡은 이유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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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제사장에게 지시했지만
전쟁의 흐름을 보고는
다시 지시를 번복한다. (삼상1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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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야 할 때인가?
기도하지 않아도 될 때인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도우시면 감사하지만
돕지 않으시면 내가 일어나 싸우면 된다.
기도하려다가 기도할 마음을 접고
기도할 시간에 내가 싸우겠다.
길지 않은 글 속에 사울은 촉각을 다투며
전쟁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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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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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기억해야 했다.
왕정 국가가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 누구인지.
자신은 누구이며 백성은 누구인지.
백성들의 진짜 왕은 누구인가?
내가 인생의 왕이 되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