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이라면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안목의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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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중요한 면접을 거쳤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
살고 있는 나라의 최고 통치자 사울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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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라면
아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적절하게 결정할 것 같지만
그도 사람의 외모를 보고
중심을 보지 못한다. (삼상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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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과 별개로,
심지어 하나님이 버린 사람 앞에서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탄성을 지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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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말로 해야 알아듣느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항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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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계의 유명한 목사님 책을
읽다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본인은 기도하기에 모든 것에
통달해서 전반적인 부분에
전문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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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통제나 군림하게 되고,
양을 치는 일이나, 전쟁을 하는 일은
기도하는 일에 비해서
열등한 일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나와 다른 이들을 통해
주님의 몸을 이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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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에 초대 받지 못한 이새의 막내 아들,
하나님은 기어코 그의 등잔에 불을 밝혔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은 다윗.
기름부음 받은 자.
나발에게 극도로 분노했을 때에도
아비가일이 급히 찾아와 전한중요한 말이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이다.
내가 곳곳에 적어 놓고
기억하려는 말도 기름부음 받은 자다.
보이는 현재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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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전장에서 사울 왕의 두 번째 면접을 받게 된다.
전쟁 앞에 나약해 보이는 소년 다윗.
왕이 내준 갑옷이 익숙하지 못해서
다시 벗어 낼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모두가 입고 있는 옷을, 다시 벗을 수 있다면.
익숙함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구할 수 있다면.
칼과 창이 전쟁을 싸우게 하지만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고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삼상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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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가 요즘 기도하며
‘Like Jesus’라는 말을 한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는 현재를 보이지 않는 가치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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