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대로 하루가 무척 바빴다.
아침에 만난 목사님은 많이 우셨고, 함께 기도했다.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나는 세상은 고해라고 생각한다. 절망과 비극과 아픔이 가득한 곳
현실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내게 절망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인생을 그렇게 그리고 나면 나는 도리어 감사가 피어난다.
얼마나 감사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이 여전히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점심에 만난 부류는
새로운 차원의 사역을 담당하시는 분들이다.
그들과 하는 프로젝트.
팀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고, 리더가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일이다.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걸까?
쉽지 않은 대화들 앞에서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듣고 듣고 듣기만 했다.
그리고 결과로 말해주면 그만이다.
오후에 만난 곳은 역사가 깊은 교회다.
내 사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주님의 부여하시는 특별함 때문에 나는 믿음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곳에서의 작은 전시, 어떻게 진행하면 될지를 논의했다.
가능한 부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하겠다는 의견을 드렸다.
준비해야 할게 많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로하다.
그래도 대중교통이 마음 편하다.
오고 가는 길을 운전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쉼.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자 마자 마을모임.
마을모임에서의 귀한 시간들.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을 안아주지도 못하고 책상에 앉았다.
내일 있을 일에 대해 아무 준비도 못했다.
급하게 정리하고, 모두가 잠든 밤.
주님께 머무른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마치 제사장에게 죽임 당하는 짐승처럼.
나의 주인, 주님이 걸었던 길을 함께 걷는 것,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13:11-13)
마을모임에서 나누었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도 가르치셨고, 마음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상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셨으며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영문 밖에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에게
고난과 치욕과 억울함과 누명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앞서 걸으셨던 분이 짊어지신 치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밀하게 따져 본다면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과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있다.
매일의 선택지 앞에서 묻는다.
내일 아침을 위해 잠시 기도한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강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도록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