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지인으로 부터 괜찮은 제안을 받았다.
내일까지 답변을 달라 했지만 이미 거절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제안이 너무 필요했지만, 만난적도 없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은 제사에 바쳐진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바울에게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이 약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기를 말한다.
어려워 보이지만 쉬운 선택들 앞에
나는 현실을 거슬러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님, 내 인생의 선택들을 주님께 묻습니다.
괜찮아. 라고 말씀하시면 광주리에 담긴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과 싸우겠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하는 시대속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주님 믿음을 더해주세요.
하나님을 믿고, 믿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고,
믿는 이들 가운데 능력으로 행하신, 이 모든 일을
경험하고서도 주님을 떠날 수 있으며
이제 할례를 받으려 하는 이에게 바울은 의문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이들이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구원을 얻으려 하는가?
사람의 의지와 불신과 두려움은
우리의 믿음에 굴곡을 만든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교계지도자들의 아픔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구원을 주지만, 돈과 권세는 세상과 사람의 복종을 약속한다.
주님의 뜻이라 믿는 걸음속에 불순종이 숨겨 있다.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육체로 마칠 수 있다. (갈3:3)
아브라함에게 있어 마지막 시험은
자신의 죽음과도 같았다.
비록 이삭은 죽지 않았지만
실제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과 견줄 수 있는 우상은
그의 보물은 죽음에 이르렀다.
매일 나의 보물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까?
숨기고, 숨길수록 숨겨놓은 창고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또 광야를 걷겠지만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신다.
밤사이 주님이 내게 다시 말씀하신다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순종하면 그만이다.
복잡한 인생이지만 더없이 단순할 수 있는 게 또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