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의 만남이었다.
전시회라는 명분이 없으면
나란 사람은 좀처럼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작가들과의 만남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시는가?
우리의 고정관념들, 고집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내게 하나님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를 물으셨다.
하나님이 질문하시고 흔드시면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그곳에서 만난 지인이
마음에 결정을 했다.
이 일때문에 만나게 하셨나. 하신다.
시간과 거리를 감사하고 만난 자리에서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일하셨다면
나를 도구로 사용하셨다면 나는 그것으로 감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은 일상대로
현실위에 서게 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밤 10시가 넘었다.
아이들이 막 잠이 들려던 차였는데
내 손에 들려있던, 아내가 요즘 좋아해서 사온
버블티 한 잔에 다시 파티분위기가 되었다.
아내와 늦은 밤까지 대화를 이어나갔다.
감사하게도 아내의 고민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결이었다.
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한계앞에서 안타까워한 말들.
문제를 크게 둘로 나누었을때
그 사이에 버려지고 희생되어야 할 아름다운 가치들,
지켜내야 할 이야기들이 스러져가는게 아쉬웠다.
순종은 방향을 만든다.
하루아침에 뚝딱,은 없다.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씨앗과 기경과 여러 요소와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일시적인 잘못과는 다르다.
네가 평안할 때 내가 네게 말했지만
너는 ‘내가 듣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어릴 적부터 네 습관이 됐다.
너는 내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다. (렘22:21)
평화의 때에 평화가 전부인것처럼
행동하는 방향, 순종하지 않는 태도는 경향성이 되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강해서,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이스라엘의 동맹국들은 모두 멸망했다. (렘22:20)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믿고 싶었던 평안은
흔들렸고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고니야: 여호야긴
한 나라의 통치자라도
하나님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 지극히 작은 존재라도
하나님은 그의 신분과 태생을 아신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목동,
막내아들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한 나라를 맡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