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섬기느라
내가 소진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미묘한 온도 차이가 있다.
교회 안에서 수고와 섬김이
때로는 사람들을 탈진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의 완고함과 죄성 때문이지
공동체를 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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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그리고 역사는
수고와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복음이 전해왔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또한 사람들마다 각양의 은사를 허락하셨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았으며(엡4:11)
이는 큰 희생과 수고를 전제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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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말씀과 직접적으로 연관해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며 (엡4:12)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엡4:13)
는 말씀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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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은
결국 이런 시간 속에서 만들어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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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
대단한 수고와 헌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선택을 포기했으며
매주일마다 모임을 집행하기 위해
왕복 4시간 이상을 오가며
모임을 하고, 후배들을 돌보기 위해
그 외 시간을 할애했다.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염려했던 때였고
동시에 막연하고 불안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시간을 보내며
주님은 내게 역설적인 약속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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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드리는 시간으로
결코 소진되지 않을 거야.
도리어 더욱 풍성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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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말씀과 약속을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
인간의 완고함과 죄성으로 인해
섬김과 봉사의 문제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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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이 악을 다룬 자신의 글에서
자신의 주장을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경고하지만,
동시에 해결점 하나를 제시한다.
모든 판단과 치유는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야 하며,
악을 치유하려는 씨름 또한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단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는 말씀은
공동체의 필요를 위한 존재의 도구화가 아닌,
각 개인을 향한 믿음의 때와 순종 속에서
이해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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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을 만드는 과정이라
말씀하셨고, 이 과정은 우리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연결되는 지점임을 언급한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현실의 지혜로운 분별 속에
주님이 답해주시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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