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안으로 굽지는 않은가?
책임을 다른 곳에 묻지는 않은가?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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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가나안 사람인 수아의 딸과 결혼해서
세 명의 아이를 낳는다.
다말과 결혼한 첫째 아들 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었다.
장자의 대를 잇기 위해
둘째 오난은 다말과 동침하게 되지만
오난은 책임을 회피했고
이에 대해 하나님은 죄로 여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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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것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형제의 소유가 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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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브솔시내의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었다.
전쟁에 싸워 이긴 사람들에게
전쟁의 승리를 여호와께 돌렸다.
누가 싸워 이겼는가?
누구의 소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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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를 단순하게 풀어서
현실에 적용하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말했을 때
그가 근심하고 돌아간 것처럼.
더 복잡한 셈이 현실을 덮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그토록 인색한 나의 것은 진정 누구의 소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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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셋째에게 다말을 내주지 않는다.
두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위태로운
심정을 갖게 되었다.
두 아이를 잃은 책임을 다말에게 돌리게 된다.
당시, 자녀를 출산하지 못한 채
친정으로 돌려보낸 과부 다말은 보호할 대상이었으며
죄에 대한 책임은 두 아들이 가지고 있었다.
유다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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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매번 선택해야 한다.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