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옥에 갇힌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했다.
그는 갇힌 몸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40:8)
누추하고 억울한 환경이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그네라고 비유한다. 이 말이
이 땅에서의 삶에 비루하고 아파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천국은 주님과 동행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총리로 등극했을 때뿐 아니라
옥에 갇힌 지금도 주님의 임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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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몽처럼
사흘 안에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의 부탁은 기억하지 못하고 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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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이거나,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
내가 선대한 사람의 몰지각한 태도에
사람들은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람이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그때를 알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사울 왕은 전쟁의 적기가 이르렀음에도
약속한 선지자 사무엘이 오지 않음으로
왕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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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시간,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인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분명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