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 시절에 문서 국장을 맡은 적이 있다.
열심을 내느라 기존에
8페이지였던 주보를
매 주일마다 24페이지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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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야 하는 콘텐츠의 양에 비해
마감은 너무 빨라서
원고 펑크가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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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에 빈 공간이 생기면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나는 그 공간에
감자와 똥을 그려 넣었다.
똥은 웃기 위해서 그렸고
감자는 담당 목사님을
닮았다는 이유로 그려 넣었다.
(… 지금은 담임목사님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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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나 믿음과는
전혀 관계없었지만
그렇게 일 년을 그렸는데
어른이나 선배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 없이
주보가 나올 때마다
웃으며 격려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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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생각이 날 때마다
지금은 이불 킥을 할 만큼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그게 당시 내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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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저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었던 시선과 시간들이.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이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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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나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믿음과 관계없어 보이는
쓸모없고 허튼 모습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기다려주고
환대하는 공간이기를.
(물론 예 수님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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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강사로 참여했던 수련회에서
한 아이가 졸다가
한참 동안 호된 꾸지람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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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이런 태도나 행동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예수님은 너를 위해 죽으셨는데
너는 고작?
이럴 거면 다음 주부터…!”
맞는 말이지만 맞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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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관계가 괜찮다면
문제없지만
당시 내가 본 아이는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을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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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어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우리 기준대로 나누게 된다면
교회 안에는 교양 있고
예의 있는 아이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말도 잘 듣고, 질서도 잘 지키고
찬양도 잘하고, 바르고 고운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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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다니는 교회학교 수련회에
동네에서 노는,
몸에 그림을 그린 친구가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했지만
서로 썰매를 끌어 주다가 친해졌고,
몇 주가 지난 후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썼다가 지움)
너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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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그림,
불편한 사람들과 세련된 교회.
예수님과 어울리는 사람
예수님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무엇으로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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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은
어떻게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을까?
교회는 기다림과 환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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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인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이가
사도가 된 것처럼.
은밀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곳에
친히 찾아 오셔서 당신의 성전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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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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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시간 #환대하는공간 #교회
#미운오리새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