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일이었습니다.
카톡에 뜬 축하 인사 중에
낯선 이름과 글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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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자리에서 함께 기도했던 일,
마침 들어온 거라며 고춧가루 한 봉지 나눔받았던 일을
기억하느냐며 형제가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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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도 기억 못 하는데,
당연히 고춧가루 나눔했던 일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십 년도 더 된 시간이 소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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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게 듣는 당시의 내 모습은 엉뚱하기 그지없습니다.
혼자 자취하며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대로 살아갔다면 추운 겨울 어느 골목에서
쓰러진 채 최후를 맞았을 거라고,
당시의 나를 알던 지인이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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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로 만난 누군가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지하 기도실로 들어가 기도하는 나를 보고
황당했다는 기억을 나중에야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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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던 자취방은 옆 건물 개척교회와
벽 하나를 두고 있었습니다.
내 방에 난 창문이 찬양팀 바로 옆이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이면 집을 비우고 두어 시간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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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아플 만큼 시끄러운 찬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도림천을 걸으며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나만의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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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 자취방에서는 바닥의 진동을 느끼며
2호선 운행이 시작되는 새벽 시간에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낮인지 밤인지 모를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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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이상하지 않았던 행동들인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엉뚱했던 청년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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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그저 나의 취향이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내가 붙들어야 하는 것들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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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이 등장했을 때, 이스라엘의 대부분이 떨었습니다.
그중에는 당시 민족의 영웅이었던 요나단도 포함됩니다.
블레셋의 장수 앞에서 모두가 흔들릴 때,
형들의 도시락 심부름을 하러 간 다윗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수치를 당할 때,
그는 어떻게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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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흔들립니다.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지금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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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남긴 글의 말미에,
“허락하시면 언젠가 다시 뵙기를 바란다”는 문장을
나중에 발견했습니다.
오고 가는 동선을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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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오래전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요?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골리앗이 고함치듯,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주님의 이름 앞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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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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