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올드 타입과 뉴 타입을 이렇게 나누었다.
올드 타입은 치밀하게 계획한 후
끈기 있게 실행하는 반면
뉴 타입은 일단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한다.
갈수록 예측 못할 시대를 살기에
그래. 그렇지. 했다.
나는 어떤 타입인지 생각해 보니
애매한 모양새다.
치밀하게 계획하지도 않고
시작이 느리지만 시작하면
실패해도 계속한다.
시작이 느리거나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는 것은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이 크지만
끈기 있게 실행하는 것은
나중에 생겨난 믿음 때문이다.
내가 모니터에 적어 놓은 문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계획,
나를 향한 기업의 풍성함’
문구를 적은 나조차도
계획과 기업이 무엇을 뜻하는지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를 부르신 뜻을 믿는다.
나를 부르신 분을 믿기에.
콜링은 콜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중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지만
주님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번득 들면
이 시간을 숙제나 선물처럼 생각한다.
과제나 출석은 잘해낼 자신이 없어서
제출하지 않는 것보다
잘하든 못하든 역할을 감당하는 게 중요하다.
출제자의 의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숙제처럼 생각한 일들이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버리기 잘한 습관들>을 쓴 박길웅 목사는
“하나님은 좋은 것만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라고 말한다.
지난 시간을 생각하며 아멘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를 부르신 뜻을 믿는다.
나를 부르신 분을 믿기 때문이다.
제출하기 싫었던 숙제 같은 하루여도
그 시간은 선물과 같았다는 것을..
<노래하는풍경 #1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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