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오는데 딸 온유가 내게 매달려서는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아빠가 멀리 가는 걸 아나?’ 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알고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없을만큼
온유는 내 목덜미를 꼭 안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집을 나서며 아내와 딸을 안고 기도했다.
온유 뿐 아니라 아내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그래서 집을 떠나오는 발 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할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밝은 목소리다.
용케 힘을 냈나보다.
활기 있는 목소리를 들으니 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비행기안이다.
이제부터 한국시간은 잊기로 했다.
이스라엘 시간은 현재 2시 20분.
공항에서 동역자들에게 문자로 기도제목을 보냈다.
‘주님과 동거하며 보내는 시간이 되게 해주세요.’
이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사역과 삶은 너무나 다른 영역이었다.
단적인 예로 사역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가운데 서있기 위해서는
때론 사역을 포기하고 가정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가노라면 참 느리게 걷는 것만 같다.
나만 어리석은 삶 가운데 서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복되다. 말씀하신다.
내 인생의 최종 평가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이 일하셨다라고 생각되는 전환점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 가운데 서 있기를 힘썼다.
나는 그 때마다 몇 개의 말씀을 기초로 삼았다.
그 중 하나는 가나안 정탐꾼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다.
이런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이스라엘 위에 펼쳐져 있다.
나는 바로 그 이스라엘로 향하고 있다.
이스라엘로 향하는 지금 내가 가장 꿈꾸는 것은
모든 시간, 주님과 대화하고 답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보는 것 같이 바라보고
주님께서 보고자 하는 것을 촬영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그 분과의 교제를 이번 이스라엘의 목표로 잡으려 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내 평생동안 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여정의 첫번째는 버드나무와 나비공장 식구들과 함께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가지고 온 카메라를 보니 주눅이 든다.
사진작가라지만 내가 가진 카메라는 작고 초라한 것이다.
하늘과 가까운 이 곳에서 하나님은 여러 추억들을 생각나게 하신다.
누군가의 자켓 촬영을 하기로 한 날이다.
그 날도 지금처럼 주눅이 들었다.
나는 촬영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책들을 사서 참고했는데
흡족한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해야 했는데
절망할 수 밖에 없을 금액대었다.
그래서 힘이 빠졌고, 용기도 잃었다.
다음 날 촬영하기로 했는데 그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 앞에 촬영일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밤. 이 일을 놓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내 마음에 말씀하셨다.
“내가 사진 찍는 것 자체가 기적이잖니?”
그렇다.
나는 눈이 색약이라 꿈꾸었던 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신체검사에서 보기좋게 떨어져 버렸다.
선생님이 되는데 색약이 얼마나 큰 장애가 될런 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는데는 그보다 더 방해가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것은 전혀 방해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내가 사진 찍는 것은 은혜의 범주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 날,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을 덧붙이셨다.
“내일을 걱정하지마렴, 내일 내가 너의 조명이 되어줄게.”
아. 나는 정말로 가장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어떤 값진 조명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좋은 조명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모든 상황과 조건은 같아 보였지만 내 마음은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시면 나는 살수 있는 것이다.
기도를 끝내고 촬영할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비는 내일이면 그칠 겁니다.
내일은 가장 좋은 촬영이 될거예요.‘
그리고 다음날 시원하고 맑은 날씨속에 멋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이런 저런 추억을 안고 6시간째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