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열매가 꽃 피어라/야고보서 3:13-18 >
얼마나 많은 지혜자들을 보고 있는가?
명문대학들과 수많은 연구소에도 얼마나 많은 지혜자가 있느냐?
하지만 성경은 그들을 지혜자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혜자라면
그 지혜는 야고보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맥락을 따라
행함으로 그것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는
함께 거하면서 보여주는 학습이었다.
유명한 유대랍비들은 그를 따라 다니는 제자가 많았고, 동거동락하며
제자들을 양육했는데
이 모습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신 방법과 다르지 않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아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무엇인가?
사실 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열매를 취해 볼 수 있다.
내가 가진 지혜가 참되다면
그것은 우선 순결하며, 평화를 이룬다.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어야 한다.
의의 열매는 곧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 거둔 열매들이다.
그렇다면 그 열매가 악하다면
그것은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
이미 야고보는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했다.(약1:17)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닌 지혜는 악한 지혜로
시기와 다툼인데
이것의 열매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들 이다.
그것은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지혜로 뿌린 씨앗들의 열매들을 본다.
그것이 세상적인 지혜와
하나님에게로부터가 아니라 육신의, 정욕의 것인지,
궁극적으로 마귀에게서 온 것들인지.
그것은 열매로써 알 수 있다.
내 마음에 시기와 다툼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자.
세상은 양육강식의 세계를 말한다.
사실 그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맞다고 해서 그 룰을 따라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의 온갖 다툼과 혼란은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빌립보서는 옥에 갇힌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보낸 서신이다.
기쁨의 서신이라 할만큼 기뻐하라는 부탁을 많이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한다. (빌1:27)
왜냐하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빌3:20)
그래서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으로 이 부조리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시민권은 우리 손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믿을 뿐이다.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입을 크게 벌려 그 분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선 곳에 평화가 임한다. 의의 열매가 꽃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