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오신다.
왕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라.”
이사야의 말씀부터 이어오던
말씀의 성취가 이제 눈 앞에 이르렀다..
원어적으로는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천국이 이미 임했다. ‘
세례 요한의 외침 앞에 사람들은
왕의 오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 세례의 의미는 애굽인들이 홍해에 수장된 것처럼
그리고 수장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죄에 대하여 죽고 주님과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이들이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형식적인 세례 만으로
왕이 오심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철저하게 정결예법을 지키던 그들에게
과연 무슨 죄목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들로 인해
선별된 자들이라 여긴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한다.
그들의 죄는 마음에 숨겨져 있었으며
그들이 자랑하는 신분은
널려 있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고 꾸짖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하지만,
약속을 믿어야 할 것인가?
약속의 주최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할 것인가?
율법 앞에 드러나는 죄는 없을지 모르지만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죄는 없다.
드러나는 죄가 하나도 없지만
주님의 법도 앞에 서지 않으면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임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놀라운 은혜의 초대이지만
그 분이 오실 길을 예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모조리 잘려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좋은 나무가 되고 싶지만,
내가 어떤 나무인지를 말해 주는 것은
나무가 맺는 열매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
사람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을 열매 맺게 마련이다.
나는 어떤 나무인가?
내 마음은 무엇으로 조성되어 있는가?
내 마음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