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기를..

감사했던 많은 시간들속에
나는 주님을 얼마나 생각했던가?

어느 상업사진을 전공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그에게 대답했다.
당신이 상업사진을 전공했다면
그냥 상업사진을 찍으시면 된다고.
당신의 주특기를 이용해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것은 귀한 생각이지만
나머지 당신의 인생, 당신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돌리면 된다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의 호흡이 기도가 되어..
삶이 예배가 되어
나의 삶의 구석구석이 주님의 흔적이 남기를..

아내가 내 아내여서

9월은 무척 바쁜 날입니다.
한 달에 외국으로의 출국만 세 번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연말이 되겠지요.
이렇게 바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가능하면 아내와 커피 시간을 가집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있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성격이 비슷한 지점은
서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낯설어 하는 편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불편해 하는데
얼마전에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나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상대의 태도를 통해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도 이 말에 동의하며 
이런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그렇지만
그리고 별일 아닌일로 서로를 오해하게 되지만
그냥  진심을 가지고 내 갈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 같아.
그러면 혹시 내게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태도가 달라지더라구.
우리 엄마를 보면서 그것을 배우게 되었어.”

아내와 이야기를 하며
알고 있었던 답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힘이 됨을 느꼈습니다.

아내와 연애하기 전에
이런 추억이 있습니다.
버드나무에서 촬영할 여비가 필요해서
일일찻집을 연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내도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혼자 앉아 계신 시각장애인 목사님에게 다가가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아. 명경은 이런 친구구나..

커피를 마시며 그때의 기억을 말해주었습니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늘 그런 기분을 경험했었거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서있는 마음
그 마음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찾아가서 말 걸어주게 되더라고..

얼마전 아내와 술취해 거리에 자빠져 있던 
할머니를 부축해서 
한 명은 할머니를 돌보고
한 명은 택시를 용케 잡아서
태워 보낸적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친구분이 우리에게 고맙다 인사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떠나며
내 마음에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를 도왔다는 감사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아내가, 내 아내여서 그렇게 감사했습니다.

일본 코스타 갑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몇 분 전,
잠깐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을 넓게 사귀지 않는 성격 때문에
구석에 이리 앉아 있습니다.

주님께 묻습니다.
더 잘 난 사람 많은데
왜 저를 사용하시나요?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은혜앞에 감사하고 감사하지만
쓸만한 사람들 많은데 왜 저 인가요?

그렇다고 제가 주님앞에
엄청나게 쓰임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진 능력과 재능과 성품과 영성에 비해
말도 안되는 자리에 서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언제쯤 이 거품은 다 빠질까?
거품이 빠지는건 괜찮지만
거품이 빠지고 나면 마치 하나님이 내게 일하신
그 은혜까지도 도매급으로
매도당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주님, 주님,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주님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가끔 아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얼마동안 선교지에 가있는 것은 어떨까?
이 말이 두렵지만, 기대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단순한 생활 속에서
좀 더 주님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요?
한국은 너무 세련되고, 너무 부자나라이기에
너무 손쉽게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기에
주님께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나는 그 어디라고 하더라도 주님을 만나지 못할런지 모릅니다.

내 마음 가득 주님을 부르고 또 부르겠습니다.
이번 일본 코스타는
은혜를 나누기 위해 참석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주님이 내게 은혜를
부어주시려는 자리일지 모릅니다.
주님, 내 마음의 주인 되어주세요.

바쁜 여러 시간속에서

어제는 조금 당혹스러웠던
생각이 많았던 저녁이었습니다.
온유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교회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이들을 대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신앙교육에서
8할 이상은 부모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을 품고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 실수들이 가득했던 며칠,
이럴때면 나는 긴장하게 됩니다.
주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기울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혹스러운 위기를 넘기고 난 뒤에
주님께 묻습니다.
더욱 단순하게 주님을 바라볼 것을 생각합니다.

겸손하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대단한 무엇을
청년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가득한 나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일 일본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만날 청년들을 생각하고
청년들에게 나눌 메세지를 생각하고
며칠동안 헤어질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아. 나는 가족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에 있는 내내 가족을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며칠뒤 또 인도로 떠납니다.
한달에 3개국을 밟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입니다.

하나님,저와 우리 가족을 사용해주세요.

영종도에서의 시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아름답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흐름이 있지만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반응을 따라
용서에 대한 메세지로 흘렀습니다.

내 이성과 감정으로
용서할 수 없지만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해주신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나누었습니다.
그저 주문이 아닌,
내게 맡기신 그 분의 이름의 권세

영종도에서의 밤,
가정을 이루고
평안한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조금 불편하다 싶으니
그만큼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시간도
풍요롭고,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긴장하게 됩니다.

어느 곳이건
그곳에 주님의 성전이었으면..

주님 도와주세요

아이들과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의 의미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이들과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밥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숨 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씀 읽는 시간을 통해
주님께 길을 물어보고
그 길을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해주세요.

주님, 순간순간 본질을 생각합니다.
본질 앞에 비본질이 앞을 가릴 때가 많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날마다 날마다.

본질과 비본질

하나님, 
고민과 갈등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본질과 비본질, 
눈에 보이는 가능성과 계산과 판단들 앞에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걸까요?

이런 것들이 공감능력일까요?
주님, 답답한 현실 앞에서
나는 현실의 현주소를 바라보게 됩니다.
설득해서 끌고가야 할까요?
아니면 인정해야 할까요?
이 모든 고민을 주님게 올려드립니다.

마산에 다녀와서

며칠 마산을 다녀왔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아서
웹접속도 평소보다 적었습니다.

내가 묵은 숙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과 바다, 여름의 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고,
실제로 2000년전에 살았던 어떤 왕보다
더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 입술에 감사는 커녕
불평만 가득한 세상속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것일까요?
비교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면
유행만 따르지 않으면..

문화속에 살아가기에
우리는 문화의 지배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예배조차도 현재의 문화속에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화속에서
나는 어떻게 내 마음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차라리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았던
더 불편했던 그 곳이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소망을 품고

오늘 살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만 보길 원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을
소망으로 붙들지 않겠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을
소망으로 붙들어서
헛되고 헛된 노력으로
평생의 시간을 붙드는게 아니라
 
평가하실 분,
심판하실 분,
나를 사랑하시는 분 앞에서
잘했다. 내아들.
그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주신 복,
주신 사람들,
이미 누리고 있는
수많은 은혜에
감사하게 해주세요.
채워지지 않는 소망으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는 것이 아니라
장대위의 놋뱀되신 주님을
보길 원합니다.
 
내일은 새벽같이 전주에 내려갑니다.
어린이캠프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지혜를 주세요.
함께 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주님

긴 시간 운전하는게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뜨거운 날씨와 여러 이유들.
운전하는 동안 내 말과 생각과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문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님만이 영원하십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주님이 중심입니다.
시간과 시간속에 우리를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