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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투성입니다.

DSC_3022

아프리카 차드에서 돌아왔습니다.
7년만에 찾아간 그곳은
수도 은자메나의 포장된 도로와 가로등 설치등 바뀐 모습에
반가움도 있었지만, 긴 시간을 들여 바뀐 결과물치고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뜨거웠던 그 곳 하늘,
45도의 작렬하는 태양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풍경은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아픔들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살피는 중입니다.
나중에 다시 나누겠지만,
그곳에 만들어준 우물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조용히 우물만 보고 오려 했는데
꼬마녀석들에게 박수도 받고, 사람을 대표해서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우물로 인해 고마워한다며
학교 영어선생님에게 시원한 코카콜라?한 병을?선물받기도 했습니다.
숨을 고른 후, 다시 그곳에 우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우선 밀린 작업들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서둘러 차드에 대한 사진을 정리하고,
릴레이 전시를 통한 투웬티프로젝트도 이어나가고 싶지만
절제,절제를 외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컴퓨터도 말썽이라 연일 인내심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캘린더도 준비하려 합니다.
네팔에 대한 응원을 내년 캘린더에 담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차를 적응해 가며
몇 군데의 교회서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교인들 뿐 아니라 저도 위로와 힘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골의 따스한 교회서?창문을 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따사로운 햇볕, 싱그런 바람에 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꿈결같은 시간으로 기억되지 싶습니다.

그제는 개봉동에서?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해달라는 요청은 거의 무조건 수락하는 편입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 앞에서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사형으로 뻗은 넓은 본당에
서너명만이 드문드문 앉아 있습니다.
앉아 있는 분들은 내가 누구인지도,
어떤 메세지를 전하려는지도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 얼굴이었습니다.
보통은 몇 명의 사람이라도 미리 모여있거나, 찬양을 하거나
약속된 순서를 따라 진행되기 마련인데
마치 조용한 도서관에서 물건을 팔러 온 분위기같아 보였습니다.
제법 시끄러운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중앙문이 활짝 열여져 있는 상태라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관심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낯선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두렵거나 떨리지도 당황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처음 대하는 경험이라 낯설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긴 시간을 통해 내게 가르쳤습니다.
알 수 없는 한 명을 통해서도 주님은 당신의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통해 흑암의 세력이 깨뜨려 진다는것..

메세지를 전하는 도중에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초청되어 들어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 분위기는 조금씩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메세지 도중에 준비한 영상을 보여주며
뒷자리에 앉아 잠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나지막하게 ‘아멘’을 고백했고
어느새 얼마는 울고 있었으며, 다짐하고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마치는 시간에는 한 자매가 찾아와서
자신의 기도응답이라며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좋게 마쳤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모든 시간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일상은 감사투성입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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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보면 믿음이 생기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하지 않는가?
기적을 보거나, 경험하는 것과 믿는 것은 차이가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자연적 기적을 경험했다.
심지어 일용할 양식도 하나님께 그저 얻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신앙은 여전했고, 불평은 더해갔다.

집회를 통해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지만,
어떤 기적이나 은사만을 구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감각적인 현상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제한하는 것이다.

은사가 있지만 마음에 평강이 없는 사람도 많다.
주님조차 통제 못하는 고집 센 사람도 많다.

모든 행사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그 은혜가 드러난다.
은사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은혜를 구하라.
그것은 사랑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8]

노래하는 풍경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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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외국을 나가보면?
비로소 이른 밤을 알게 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머무르던지,?
숙소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로는?
집으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덮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삶을 알게 됩니다.
거칠고 노곤한 육체는?
밤을 통해 쉼을 얻습니다.

단순하다는 말이 거칠고 험하거나
피곤하다는 말의 언저리에 있는 말은 아닙니다.
단순하다는 말은?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을 털어내고,
주님과 만나는 접촉면의 불순물을?
정돈한다는 의미와 가깝습니다.

한국으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풍요로움이 나를 안습니다.
온갖 단순하지 않는 요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선교지에서 만난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불편한 잠자리와 이동 수단,?
느린 인터넷 속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상점들..
도대체 거기가 더 좋을게 뭐란 말인가요?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주님과의 친밀함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풍요로움이?
오히려 내 눈을 멀게 할까?
내 마음을 조심스레 살펴봅니다.?

[노래하는 풍경 #7]

 

?

보이지 않아도 두 아이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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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그것밖에 못 해요?”

개구쟁이?성진이가?도발하며?내게?공을?뻥?찹니다.

질?수?없다며?골목?저?너머까지?나도?뻥하고?공을?찹니다.

골목길에서?삼십?분이?넘게?같은?동작을?반복하지만

성진이(9세)와?사랑이(8세)는?지칠?줄도,?지겨워할?줄도?모릅니다.

함께?땀내며?놀아줄?어른이?없기?때문인지도?모른다는?생각에

마음이?아파옵니다.

이제?헤어져야?하는?시간을?직감한?성진이가?말합니다.

“우리?집에서?라면?먹고?가면?안돼요?”

어느새?애교?많은?사랑이도?팔에?매달려?조릅니다.

“우리?라면?같이?먹어요.”

다음?기회를?약속하는?나를?보며?아쉬워한?아이들의?모습에

안타까움이?올라옵니다.

(111)

성진이와?사랑이?엄마는?눈이?아픕니다.
처음부터?눈이?안?보였던?것은?아닙니다.

희미하게나마?형체를?알아보던?적도?있습니다.

빛과?어둠이나마?구별할?수?있던?적도?있습니다.

각막이식과?망막?수술?그?외에?여러?수술을?열?번이나?견뎌?낸?눈이었지만

2010년?이후?볼?수?있는?것은?어둠뿐입니다.

“비켜주세요.?비켜주세요.”

사람들이?많이?모여?있는?곳을?지나칠?때마다?성진이는?용감하게?외칩니다.

말썽을?피우는?성진이?때문에?엄마는?속이?상하다가도

손을?잡고?길을?인도해?주는?성진이가?있어?참?다행이란?생각이?듭니다.

“그때?사랑이만?지웠어도…”

돌아가신?엄마는?사랑이를?볼?때마다?속상해하셨습니다.

사랑이를?임신하면서?좋지?않던?엄마의?눈이?더?나빠졌습니다.

임신?5개월?째,?눈의?망막이?다시?떨어졌습니다.

병원에서는?전신마취?수술을?해야?한다며?낙태를?권유했습니다.

말도?안?되는?이야기라며
엄마는?뱃속의?사랑이를?안고?다른?병원을?찾아다녔습니다.

부분?마취로?수술을?해보자는?병원을?만나
엄마는?다행히?사랑이를?만날?수?있었습니다.

(115)

엄마의?발톱이?길게?자라면?성진이와?사랑이는?다툽니다.

“내가?엄마?발톱?깎아?줄?거야.”

“아니야.?내가?엄마?발톱?깎아?줄?거야!”
아이들이?발톱을?깎아?주는?행복한?엄마가?세상에?또?있을까요.

성진이와?사랑이는?엄마에게?가장?소중한?보물입니다.

아무것도?보이지?않는?눈이기에

엄마?혼자?성진이와?사랑이를?키우는?일이?쉽지만은?않습니다.

남편도?집을?떠나가?버리고
친정엄마까지?갑작스레?돌아가셨을?때는

막막함?뿐이었습니다.

다행히?여러?곳에서?도와주신?덕분에

성진이네는?이제껏?살아갈?수?있었습니다.

지현씨의 집에서 성진이와 사랑이

혹여나?눈?상태가?좋아져

다시?수술하고?눈으로?세상을?볼?수?있게?될지

엄마는?아무것도?알?수?없습니다.

하지만,?성진이와?사랑이가?곁에?있기에

엄마는?오늘도?웃을?수?있습니다.

글?이요셉,?이음??사진?이요셉

내가 노래하는 풍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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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전체 중 극히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외식(外飾)자이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내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만일 모두가 나를 부정(否定)해도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이 긍정(肯定)한다면
나는 다행스러운 길을 걷고 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

내가 노래하는 풍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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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나의 첫 변화는 쉼이었다.
지독한 일 중독자였던 때문에
내가 쉴 수 있는 명분, 혹은?주님의 말씀이 필요했다.

안식은 주님의 명령이다.

그것은 쉼이 재생산을 위한 휴식이라는
실용적인 관점을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은 영혼의 날인 동시에 육체의 날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헤셸은 <안식>에서
성경에서 ‘거룩함’이란 뜻을 지난 ‘카도쉬’라는 단어를 가지고
안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 최초의 거룩한 대상은
창세기에서 창조 이야기가 끝나는 대목에서 처음 발견된다.
바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혜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공간이 없는 시간을 소유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없는 공간은 소유할 수 없다.
사람은 공간을 넘어서지만, 시간은 사람을 넘어선다.
시간이 창조의 과정이라면, 공간의 사물들은 창조의 결과물 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진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안식일을 지켜야겠구나.’

율법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주님의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시간 속의 거룩함을 생각하다 보면
마치 이 하루의 전체가 빛으로 둘러싸인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직선운동으로의 우선순위로써 주님과의 만남 이후,
별개의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운동으로 주님은 모든 일의 중심에 서로 이어져 맞닿아 계신다.
마치 모빌에서 많은?이음새들이 그 중심축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노래하는 풍경 #5]

내가 노래하는 풍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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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헤브론 왕을 거쳐 이스라엘 왕이 된다.
여부스족의 난공불락 예루살렘 요새까지 정복했다.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난 후,
그가 한 일은 법궤를 옮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웃사가 죽게 되었고
그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옳은가?
하나님이 내게 기름 부으셨지만
사울 왕처럼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삼으신 일을 후회하고 계신 걸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 또한?한순간이다.
하지만 웃사가 죽고, 법궤를 머물게 한
오벧에돔의 집은 복을 받게 되는?것을 보게 된다. (삼하 6:11)

문제는 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
지난 잘못에 대해 회개하고
주님의 법도를 따르면 된다.
다윗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법궤를 옮기는 방식을 버렸다.
그것은 실용적이고,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방식을 따라
다시 법궤를 옮겼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대상15:13)

그는 다시 주님 안에 기뻐 춤추었다.
미갈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했다. (삼하6:21)

[내가 노래하는 풍경?#4]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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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 불빛들이 반짝거리는 게?마치 별 같아.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
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예쁜 반짝거림은
눈이 내린 후에만 볼 수 있는 줄 알았어.

가끔 불을 피울 때도 오빠가 피우고,
불이 꺼질 때도 마지막까지 있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불이 다 꺼져갈 때
이렇게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줄은 몰랐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별처럼 그렇게 반짝거리는 게 너무 신기해.

불이면 다 같은 줄 알았는데,
다 아는 줄 알았는데,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이 있구나.”

어느 나라에서,
선교사님이 그날의 일정이 다 마쳤는데
늦은 밤에 불러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아무것도 모른 채
헤드라이트를 의지해서 비포장도로를 달렸습니다.
인적이 드문 어느 장소에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사람도, 건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차 시동을 끄고
선교사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그 손가락을 따라?시선을 하늘로 향했더니

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은하수.
진작 알았다면 삼각대라도 챙겼을 것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해
쏟아지는 별빛들을
내 눈에, 내 마음에 가득 담았습니다.
늘 하늘에 존재했지만
결핍이 있어야만 보이나 봅니다.
전기가 없고, 불빛이 없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빛은 찬란하게 반짝거렸습니다.

아내는 그런 반짝거림을
눈이 내린 날 경험했었나 봅니다.
가끔 옥상에서 불을 피우곤 합니다.
어제는 교회서 예배를 드린 후, ?아내가 불을 피웠습니다.
장작 사이에 고구마를 구워 먹기로 했습니다.
장작을 구해다가 쌓아 놓았다가 야단맞았는데
막상 피워보니 아내도 좋았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별빛들이, 불빛들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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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가 할 몫은 어디까지인가?
중학교 때,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한다고
온 길거리를 쏘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과연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지쳐만 갔고
나는 밑을 알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성경은 내게?끝없는 숙제와 같았다.
한 예로?예수님은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가장 작은 자는 누구이며,
그런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마치 온 길거리의 쓰레기만큼이나 많은데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나는 순종하는 것이 두려웠다.
시작했다가 중간에 발을 떼는 것보다는
아애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숲에 잘려 나간 나무를 보며, 살아가며 알게 되었다.
완전히 깨끗한 절단면이란 것은 없다.
나는 내가 사진을 찍으며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진을 찍는지,
기록의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지,
고민하는 한 달 간 사진 한 장을 못 찍을 만큼 심각해졌다.
하지만 한 달이 되던 날,
집 근처 흐르는 개천을 사진으로 찍은 후
마법의 봉인이 풀린 것처럼 다시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어떤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답 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라는 것을.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문제 있는 인생이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없는 인생이 문제이다.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내 안에는 주님을 향한 순수한 열망뿐 아니라
수많은 욕망과 절망,?삶의 질척거림이 한데?얽혀 있다.

인생에 깨끗한 절단면이란 것은 없다.
완전히 깨끗한 사람도 없고,
완전히 절망인 사람도 없다.
그래서 완전한 기대도, 완전한 정죄도 있어서는 안된다.
오직 주님만이 완전하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3]

내가 노래하는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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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렵게 하는 수만 가지 두려움이나
내가 겪은 어떤 큰 고통도
나를 완전히 죽이지 못 했다.
오히려 그 시간은 나를 단련시켰다.

내가 아는 한,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한 욥조차도
고통으로 인한 파멸이 완전한 파멸을 의미하지 않았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욥의 고백처럼
나의 가는 길은 오직 주님이 아신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두렵거나 고통하게 하지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신다는 사실은
고통 가운데서도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