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17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 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시32:8/새번역)

 

주님, 걸어 갈 길을 가르쳐 주세요.
가르쳐 주신 데로 걸어가게 도와주세요..

주님 없는 길이 나를 흥겹게 할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쭉정이와 같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빈 자리만 남습니다. 허기입니다.

비록 주님이 지시하고 가르치신 길에
답이 보이지 않아도
그 앞에 성실하게 걷고 싶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성실한 사랑.
마치 내게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시는 그 신실하심.
나도 주님을 따라 그렇게 걷고 싶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그 길을 따라 걷도록 인도해주세요.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5]

#답이보이지않아도 #가르쳐주시면 #그길을따라 #그신실하심따라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가졌을 때
하나님의 사람도 알아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남도, 사명도, 영혼도, 생명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구하라 말씀하셨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4]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3

현실을 살아가는 것과
말씀 위에 서는 것에 거리감을 느낀다.
말씀은 그저 말씀일 뿐인가? 현실은 다른가?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그렇게 신실하게 내 삶을 인도하신 주님을 생각한다.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 본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불러본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 나는 즐거워 할 것이다.

여전히 내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은 나를 아시며,
내 인생을 통해 이루실 당신의 뜻 또한 아신다는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3]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2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내 마음을 훔칠 수 없다.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겠다.

이 세상의 신은 나를 뒤흔들어 놓으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집이다.
내 마음이 온전하게 지켜지면
상황은 그저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2]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1

이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자는 많지만
죄악된 나를 향해,
주님의 울음앞에 우는 자는 적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1]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0

우리는 일상속에 다양한 영적 전쟁을 겪게 된다.
그 싸움을 이기기 위한 많은 전략과 전술들이 있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 싸움 그 자체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사단은 그 싸움의 중심부에 자신이 있다고 우리를 미혹한다.
하지만 언제나 영적 전쟁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상대를 꾸짖는 말 한 마디 없이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죽으심으로 이 싸움의 승리자가 되셨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70]

#영적전쟁 #전쟁의승리자 #전쟁의주인공 #예수님이승리자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9

반 고흐의 말과 삶은 내 마음에 큰 울림이 있다.
비록 실패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믿고 있던 바를
충실히 살아내려 애썼다.
죽어가던 창녀 크리스틴과 그의 아들을 품으려 했고,
탄광촌에서 광부들과 같은 옷을 입고 사랑하려 애썼다.
공동체의 꿈이 산산조각 난 후에도
그는 창살 있는 병실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한
수많은 그림들을 그려냈다.

언젠가 라파르가 고흐에게 삶의 신조가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볼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 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그의 인생에 때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과연 완전히 이해할만한 사람이 존재할까?
그는 삶 그자체를 진지하게 살았고, 그려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오늘까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것이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 그려낸다는 것..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9]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8

예수님은 잠드시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울부짖고 있는
풍랑 가운데 요동하는 이 배는
현재 거라사를 향하는 길이다.(눅 8:26)
그 곳에는 무덤 사이를 거하는 광인 한 명이 있다.
거라사에는 바로 내가 있다.
이 거친 항해길 너머에 한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다.
말도 안되는 대가지불을 감수하고라도 그 사랑은 거침이 없다.

광인 한 명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이 배는 멈추지 않는다.
그 사랑은 결코 파선하지 않는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7

우리의 항해길을 걸어가며 수많은 위협앞에 눈물짓는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보며 탄식하고
자연과 세상과 불합리한 구조 앞에서 탄식한다.
관계와 현실 앞에서 눈물 짓고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무관심하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물으신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과 함께 한 이 배는 결코 파선하지 않는다.
주님을 믿는다고 환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풍랑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게 된다면
환난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가?
만일, 주님을 통한 나의 구원을 믿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영역가운데
주님의 일하심까지 신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7]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6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3:15)
여자의 후손, 예수님은 사단의 나라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은 종국에 사단의 나라를 완전히 멸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것이다.
주님은 가장 결정적인 승리를 취하셨다.

하지만 패배한 사단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사단은 고작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그 아픔은 우리가 십자가를 묵상해 볼 때 알 수 있다.
자신의 멸망을 목전에 둔 사단은 더욱 극렬하게 항거할것이다.

우리가 탄 배는 결코 파선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단은 그 배를 파선시키려는 듯 위협한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 위협은 더해질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