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80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크신 구원을 노래했지만,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온 회중은 모세를 향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된다.’고 원망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한 현실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원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출16:8)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이스라엘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원망을 했지만
그것은 현실에 대한 원망도,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도 아니었다.
자신들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었다.

“여호와는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시34:18)

반대로 다윗이 오늘 드린 감사의 고백은
현실 속에 일어나는 처절한 아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놀라운 주님의 인자와 진실을 발견하고 드리는 고백이다.

똑같은 현실 속에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내가 노래하는 풍경 #80]

내가 노래하는 풍경 #79

나는 오늘의 시간 속에 갇혀 지내지만
주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 위에 계신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갈 뿐이다.
글과 함께 올린 이 사진은 1초가 넘는 시간을 기다려 나온 결과이다.
시간이 중첩되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나는 고작 사진 한 장 앞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차원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진 속의 몇 초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시간 자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내 눈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아도
당신은 날마다 성실하게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사55:8-11)

[내가 노래하는 풍경 #79]

내가 노래하는 풍경 #78

내가 일하는 방식처럼 주님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주님은 당신의 가장 선하신 뜻을 따라 일하신다.
내가 주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도와 때를 따라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8]

내가 노래하는 풍경 #77

엘리 제사장 때의 어두운 사사 시대를 깨뜨릴 한 사람을 찾을 때
그저 앙숙이었던 브닌나의 갈등과 자신의 불임으로 아파하던
한나의 심정을 통하는데서 시작하셨다.
마치 사울 왕을 대신할 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아들을 찾으셨던 것처럼.

제사장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비대해지고, 악행이 심하여질수록
어린 사무엘은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으며 자라났다. (삼상2:26)
이 말은 어린아이들이 그저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말이다.
이렇게 자라나는 것은 사사 시대의 절망을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다.

비슷한 표현을 누가는 예수님께 돌리고 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40)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예수님에 대한 이런 표현은 그저 어린 시절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는 차원을 넘어,
말라기 이후 어둠이 가득한 시절을 깨뜨리고
온 인류의 구속주로 자신을 드릴 예수님의 일하심을 특별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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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76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수많은 전쟁 기사들은 단 몇 줄로 그것을 기록하지만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싸움에서의 시간은 매우 느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의 몇 줄로 끝내버리는 전쟁의 기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셨다고 읽을 수 있다.

애굽에서의 고된 노역으로 하나님을 찾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탄식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태어난 모세는 애굽의 왕족에서 자라게 되지만
다시 미디안으로 도피하게 된다.
그는 나이 80이 될 때까지 양을 치는 목동으로 지내게 된다.
주님은 당장 애굽을 무너뜨릴 강력한 무언가를 강구하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큰 구원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무능력한 노인 한 사람을 부르신다.

시간이 느리게 움직인다는 말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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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121

“으음.. 기차소리..”
자취를 하던 시절에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전철 소리를 들었나 보다.

처음 그곳에 이사 와서는
자다말고 철컹철컹거리는 낯선 전철소리에
귀 기울이며 온갖 상상을 펼쳤는데
제법 익숙해진 후에는
더 이상 전철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졌던 꿈도, 열정도 그럴까?
같은 꿈을 계속 바라면
더 뜨거운 소망으로 타오르면 좋을 텐데..

귀에 익숙해질까 봐
더욱 내 마음을 열어야겠다.
꿈꾸는 기능이 멈춰 버리기 전에.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1]

내가 노래하는 풍경 #75

사울 왕을 버리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 유능한 누군가를 찾아서 왕으로 세우지 않으셨다.
아직 작고 초라하지만, 그래서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한 막내를 찾으셨다.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인 사무엘조차 그를 몰라볼 만큼
다윗, 그는 볼품없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기까지 성경의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신다.
시대의 위기와 절망은 이렇게 처절한데도
성경의 시간은 느리게 움직인다.
그 시간이 길지 않으면,
다윗 또한 또 한 사람의 사울 왕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은
그분의 언약적 사랑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5]

내가 노래하는 풍경 #74

시대의 절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나 자신의 한계를 볼 때마다 울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성경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은 종종 자격 없는 한 사람을 찾아와서 그를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말하고 있다.

자격 없는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 해당되지만,
구원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믿는 이는 드물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4]

내가 노래하는 풍경 #73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가 흔지 않게도
나를 배우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기도하며 쉽게 어떤 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눈물을 흘려야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눈물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따른 하나의 결과일 뿐,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믿음으로 기도하려 한다.
뻣뻣한 마음이든, 무엇이든
내 마음의 진심이 하나님께 통해 있다면 그것이면 족하다. 고 믿는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3]

내가 노래하는 풍경 #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 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당신의 호흡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듯, 우리를 살게 하시며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무엇보다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요1:1)
불확실성 속에 어디로 가얄지 모를 우리의 처지와 어둔 시절이
마치 광야와 같다면 우리를 궁극적으로 살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