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145

여호수아를 보면 그의 시작은 모세의 시종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여호와의 종으로 끝이 난다.
그의 인생, 40세에 한 사람의 시종으로 시작하여
80세에 존경받던 위대한 지도자를 대신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수 1:7)

얼마나 두렵고 떨었을까?
국부가 된 모세의 죽음,
그리고 모세의 곁에서 40년간 봐왔던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

연약하여 두렵고 떨리는
그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신다. (1:6, 7, 9)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5]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4

아빠가 되기 전까지
육아에 대한, 가정에 대한 이상은
말 그대로 이상이었고 관념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개월 동안
아내는 아이와 함께 극도로 짧은 수면시간을
함께 했고,
수유량을 확보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먹어야만 했다.

경험하기 전에는
이러저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면 차이가 있다.
그래서 경험하게 되면
그 시절에 대한 경험과 아픔과 정서를 알게 된다.
그러면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나는 오늘을 실험하게 된다.
오늘을 살면 오늘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4]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3

내 인생이 내 소유가 아님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나는 삶의 작은 시간속에 좋은 풍경과 문화를 간직하려는 욕심이 가득하다.
부끄러운 내 속에 이 찬양의 가사가 수묵화처럼 잔잔하게 아버지의 마음을 그려준다.
주님의 보혈로 씻긴 흰옷 입은 사람.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나는 보기 원하네 하나님의 어린 양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나를 구원하신 분 영원한 목자되신 분
시온산 위에 있는 어린 양 그 분을 보기 원하네

나는 보기 원하네 흰옷 입은 사람들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사람들
나의 영원한 소원있네 그분을 따라가는것
흰옷입은 사람들 그들과 나도 있길 원하네

나는 보기 원하네 주의 능력의 날을
거룩한 옷을 입고 기쁨으로 주께 달려나가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 그들을 보기 원하네
시온산 위에 있는 사람들 나는 보기 원하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3]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2

회의론자인 내게 감사가 넘친다.
무엇 하나 희망과 기대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모든 것이 회색이기에
아주 작은 들풀에도 감사한다.
그래서 기복이 적은 편이다.
굳이 실망할 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지만,
감사할 일은 매일 한 아름 가득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2]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1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거나
강포자의 위협을 피해
블레셋으로 피하지 않고

모든 위협 속에서도
주의 날개 그늘에 거함.
좁고 어두운 굴안이지만
그곳은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1]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0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공정하지 않으시다.

여전히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찾아주시고, 안아주시고
내게 기회를 주신다.
내게 웃으신다.
그 사랑은 공정하지 못하다.
그래서 갚을 수 없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4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9

사람들은 불안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한다.

견고한 반석은 무엇인가? 어디인가?
나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고민했다.
아주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만나고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큰 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9]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8

사람들은 으레 만지고 볼 수 있는 공간이 전부인양 살고 있지만
우리가 거하는 공간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과 닮은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시간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마치 시간은 변장한 영원과도 같다.
유진피터슨의 말처럼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안식일을 지켜야겠구나’ 하고 생각할 것 같다.

안식일이 되자 예루살렘 거리는 조용했다.
모두가 각자의 집안에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며 안식한다.
혜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공간이 없는 시간을 소유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없는 공간은 소유할 수 없다.
또, 사람은 공간을 넘어서지만, 시간은 사람을 넘어선다.
시간이 창조의 과정이라면, 공간의 사물들은 창조의 결과물 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7

한 번 밖에 살지 않는 인생에
시간이 흘러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다 여길 만한 것에 머무르지 마라.
내가 걸러낼 수 있는 적정량은 정해져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나를 지키고,
내 안에 계신 주님 안에서의 풍요로움을 누리면 된다.

하지만 안식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 안식은 말 그대로 온전한 안식이어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7]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6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공격하지만
그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곳을 덮을 때
사단은 자신의 공격이
부메랑이 되어 도리어 자신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이다.

확대 적용해보면
우리 삶 가운데 많은 영적 공격이 있지만
그 공격을 당할 때마다 피 흘리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주님 흘리신 피를 의지해서
피 흘리기 까지 죄와 싸울 때
(사단 마귀는 죄를 먹고산다, 자신을 경배할 때 강력해진다.)
사단은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