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78

내가 일하는 방식처럼 주님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주님은 당신의 가장 선하신 뜻을 따라 일하신다.
내가 주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도와 때를 따라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8]

내가 노래하는 풍경 #77

엘리 제사장 때의 어두운 사사 시대를 깨뜨릴 한 사람을 찾을 때
그저 앙숙이었던 브닌나의 갈등과 자신의 불임으로 아파하던
한나의 심정을 통하는데서 시작하셨다.
마치 사울 왕을 대신할 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아들을 찾으셨던 것처럼.

제사장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비대해지고, 악행이 심하여질수록
어린 사무엘은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으며 자라났다. (삼상2:26)
이 말은 어린아이들이 그저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말이다.
이렇게 자라나는 것은 사사 시대의 절망을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다.

비슷한 표현을 누가는 예수님께 돌리고 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40)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예수님에 대한 이런 표현은 그저 어린 시절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는 차원을 넘어,
말라기 이후 어둠이 가득한 시절을 깨뜨리고
온 인류의 구속주로 자신을 드릴 예수님의 일하심을 특별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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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76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수많은 전쟁 기사들은 단 몇 줄로 그것을 기록하지만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싸움에서의 시간은 매우 느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의 몇 줄로 끝내버리는 전쟁의 기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셨다고 읽을 수 있다.

애굽에서의 고된 노역으로 하나님을 찾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탄식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태어난 모세는 애굽의 왕족에서 자라게 되지만
다시 미디안으로 도피하게 된다.
그는 나이 80이 될 때까지 양을 치는 목동으로 지내게 된다.
주님은 당장 애굽을 무너뜨릴 강력한 무언가를 강구하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큰 구원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무능력한 노인 한 사람을 부르신다.

시간이 느리게 움직인다는 말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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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121

“으음.. 기차소리..”
자취를 하던 시절에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전철 소리를 들었나 보다.

처음 그곳에 이사 와서는
자다말고 철컹철컹거리는 낯선 전철소리에
귀 기울이며 온갖 상상을 펼쳤는데
제법 익숙해진 후에는
더 이상 전철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졌던 꿈도, 열정도 그럴까?
같은 꿈을 계속 바라면
더 뜨거운 소망으로 타오르면 좋을 텐데..

귀에 익숙해질까 봐
더욱 내 마음을 열어야겠다.
꿈꾸는 기능이 멈춰 버리기 전에.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1]

내가 노래하는 풍경 #75

사울 왕을 버리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 유능한 누군가를 찾아서 왕으로 세우지 않으셨다.
아직 작고 초라하지만, 그래서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한 막내를 찾으셨다.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인 사무엘조차 그를 몰라볼 만큼
다윗, 그는 볼품없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기까지 성경의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신다.
시대의 위기와 절망은 이렇게 처절한데도
성경의 시간은 느리게 움직인다.
그 시간이 길지 않으면,
다윗 또한 또 한 사람의 사울 왕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은
그분의 언약적 사랑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5]

내가 노래하는 풍경 #74

시대의 절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나 자신의 한계를 볼 때마다 울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성경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은 종종 자격 없는 한 사람을 찾아와서 그를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말하고 있다.

자격 없는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 해당되지만,
구원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믿는 이는 드물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4]

내가 노래하는 풍경 #73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가 흔지 않게도
나를 배우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기도하며 쉽게 어떤 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눈물을 흘려야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눈물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따른 하나의 결과일 뿐,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믿음으로 기도하려 한다.
뻣뻣한 마음이든, 무엇이든
내 마음의 진심이 하나님께 통해 있다면 그것이면 족하다. 고 믿는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3]

내가 노래하는 풍경 #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 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당신의 호흡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듯, 우리를 살게 하시며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무엇보다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요1:1)
불확실성 속에 어디로 가얄지 모를 우리의 처지와 어둔 시절이
마치 광야와 같다면 우리를 궁극적으로 살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2]

내가 노래하는 풍경 #71

성경은 사람이 얼마나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죄많은 존재인가를 깨닫기를 말한다.
그래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로 인한 의로움이기에 자랑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주님께 끊임없이 불완전함을 고백해야 한다.
자존자가 되는 것, 그것이 죄의 시작이다.
나는 주님 앞에 끊임없는 의존자이기를.

[내가 노래하는 풍경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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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70

사진교실을 몇 년 동안 운영하며
회기마다 수강하는 사람들에게 숙제를 냈다.
“예수님이 좋아할 만한 사진을 찍어 오세요.”

사실 몇 주일이 지났지만
처음이나 나중이나 사진에 변화는 없다.
하지만 그 진정성, 고민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다.
그저 보기 좋은 사진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평범한 뒷산을 찍은 이 사진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70초 동안 셔터를 열어 찍은 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70초의 시간이 내재(內在)되어 있는 것이다.
사진, 눈에 보이는 표면이 전부가 아니다.
삶의 가치나 진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