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20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정말 그 진리를 알면
그 진리는 나를 자유케 한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그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믿고 순종할 때 . 그 진리가 살아서 나를 자유케 할 것이다.

아버지,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 진리를 믿고 순종해서
그것이 나를 자유케 하세요.
성령님 나를 인도하세요.
율법의 의가 아니라
나를 통해 아버지의 의를 이루세요..

[내가 노래하는 풍경 #20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9

내 안에 욕심과 숨은 동기들은
나 조차 다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노력은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는 존귀한 자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것은 내가 잘난 구석으로 이루는 것이 아님 또한 안다.
나는 착각하면 안된다.
교만은 착각인 것이다.
주님의 주되심. 날마다 내가 기억해야 하는 말.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9]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8

가나안 정탐꾼이 돌아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명의 악평을 듣고
주님 앞에 불순종했다.
하나님이 징계를 말씀하시자
백성들은 모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으로 진군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아서 화를 내신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기뻐하실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계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지금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거기에 귀기울이고 오늘을 순종하는 것.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7

동방박사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때
헤롯을 포함해서 당시 최고의 석학과 종교지도자가 동원되어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태어날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동방박사와 목자들 외에는
누구도 왕을 알현하지 못했다.

내가 알다는 것과
베들레헴을 향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7]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6

사단은 근거를 가지고 얘기한다.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사단은 우리를 위협한다.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랍사게의 말대로 모든 왕국이 앗수르에 정복당했다.
하지만 논리적인 근거보다 주님의 말씀이 옳다.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왕하18:29)
히스기야가 지켜줄거란 말을 믿지 말라고 앗수르의 랍사게는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말할 당시 이미 군대는 철군하고 있었으며,
성안에 갇혀있던 유다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채
그저 랍사게의 위협에만 귀기울이고 있었다.
성문을 스스로 열었다면 유다는 자멸했을 것이다.

속지말라는 사단의 속임에 속지말라.
무엇보다 주님의 음성을 붙들어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6]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5

“하나님 내게 말씀해 보세요.”

하지만 그때마다 너무 원론적인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것 알거든요.
그것 말고 내가 듣고 싶은 말 있잖아요.

하나님은 나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아직 찾지 못했기에
하나님이 내게 침묵하고 계신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을 듣길 원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5]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4

오늘 한없이 아픈 사람들을 만났다.
감사는 비교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아픔이든, 누군가의 고통이든,
아픔을 마주 대하면
우리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4]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3

하나님을 사랑하고, 찾으면
그 분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신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와 나의 시간에 대한 오해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이지만
우리의 관심은 오늘, 지금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이 뜻하는 바가
우리의 오늘과 지금을 간과하거나 무관심한다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오늘에 대한 관심을 너머
더 크고 근원적인 곳까지 미쳐있다.

아무리 강인한 권투선수라도 12라운드 공이 울리기 까지
경기를 지속하면 서있기 힘들만큼 인간은 시간 앞에 연약하다.

1을 n으로 나누면 1/n은 영원에 비해
하잘것 없는 오늘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1/1의 완전함으로 매일을 대하신다.
그 합은 무한대이다.
주님의 영원한 성실함을 상상하라.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3]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2

마음의 방향을 정하라
급한데로,
상황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마음의 방향이 주님께 향해 있으면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2]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1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는다면
홍해를 가르신 주님도 믿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믿는다면
성경 전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속히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는 한때 이신론자였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일하신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