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왜 교회를 다니는가 질문하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라고들 대답한다.
물론 그것이 답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세상을 만드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된다는 그 친밀감. 그 이상의 것들. – 요 1: 12
(나는 정말 그것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우선 구원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자.
이 또한 결코 가볍지가 않다.
난 초등학교 때 지옥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했다.
4학년 때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려다 그만 둔 이유이기도 한데,
지옥이 존재할 수 있을 최. 소. 한. 의 기준은
이 땅에서 내가 겪었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지옥이 아니다.
곰곰 생각해 보라. 그렇지 않은가?
(반대로 천국의 최소한의 당위성도 생각해 보라. 하하)
초등학교 수준이긴 하지만 이 논리로 생각해보면
어찌 구원의 문제에 대해 가볍게 판단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내가 보낸 서른 몇 해의 아픔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가 만나본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 사람의 아픔.
생각만 해도 진저리 쳐지는 그 아픔 이상 가는 고통의 영. 원. 이다.
그렇다면 이런 귀한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전하는 것이 _ 요 14:6
몰상식하며 불법한 행위겠냐는 말이다.
이슬람과 불교와 힌두교.. 등의 종교 속에
지식적인 진리가 있음을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배우는 교과목 중에 진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것들이다. 더 고차원의 것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몽학선생에 불과하다.
그 종교들이 아무리 교훈적이고 훌륭해도
그 곳에 생명이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교회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지지한다!)
편협한 사고를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이상의 하나님이라 생각한다.
그 하나님을 좁은 신학적인 틀로 가둘 수는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초한 분별력과 함께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양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_ 행4:12
흔히들, 하늘이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늘은 늘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만 기적에 너무나 길들여져서 그것이 은혜인지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가 들을 귀와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