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시 고대근동지방의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법들을 말씀하셨다.
도망 나온 종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
이스라엘 중에 창기나 남창이 있어서는 안되며
동족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아서는 안되고
이웃의 과실나무나 밭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다만 그릇에 담거나 낫을 대면 안된다. (신 23:15-25)
하나님은 그들에게 특별한 법을 말하고 있다.
그저 도망친 종들을 돌려보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내가 사는 성안에 좋은 곳을 택하여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마치 내가 있는 곳을 도피성으로 삼길 원하시는 것이다.
‘피난처’라는 난민단체가 있다.
전화를 걸어 그 곳의 사람들에게 사진찍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을 모아 집중적으로 증명사진을 찍어주어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찍으면
백 만원이 넘는 돈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하나님 나라의 형제들이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성경은 한 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서로에게 꾸어주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을 명한다. (신23:19)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들의 과실나무와 곡식밭에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신23:24-25)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것처럼
이제 약속의 땅에서는 이스라엘 각자가 하나님의 역할을 나눠 가지길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당장 내 소유가 없지만,
내 소유가 늘어나는 것만이 인생의 축복이 아니라
나를 통로로 죽어가는 이웃들이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더한 축복이라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통로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 축복이다.
하지만 기부나 헌금 그 자체가 나의 죄를 해결하는 방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축적하고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사회에 기부나 헌금을 한다.
그러면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으로 죄의 문제를 덮을 수 있을까? (신2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