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작은 교회 수련회에서 이틀에 걸쳐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마지막 밤. 말씀을 전하고
그 곳에 모인 이들에게 권했다.
성령님과 연합하여 드리는 기도. 그 방언. 을 구하시는 분은
지금 손을 들어 표시해 달라고.
그런데 아무도 표시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나는 하나님이 구하는 제사에 대해. 그 상한 심령에 대해
더욱 말하다가 내려왔다.
전도사님이 기도회를 맡으시고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막차시간에 쫓겨 강당을 나왔다.
그런데, 나를 태운 차가 수련장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성령님은 내 안에 고민을 주셨다.
그것은, 서울로 올라가는 것,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내버려두고 떠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게 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알고 있기에
다시 차를 돌려 기도회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도사님께 제가 기도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그 때, 엎드려 기도하시던 목사님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이틀동안 말씀을 들으며 내안에 부담감이 있었다고.
그것은 왜 이 같은 간증이 나의 삶, 우리교회 청년들의 삶 가운데 없는지에 대해..
그리고는 내가 마이크를 잡고 먼저 울며 회개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시간에 쫓겨 여러분들을 두고 떠나 간 것에 대해..
또한 청년들을 향해 외쳤다.
저를 기억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죽은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혈류병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는 그 절박함이
여러분에게 있냐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 거리끼는 게 왜 그렇게 많냐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회개하라! 외쳤다.
엄청난 회개의 기도가 터지고,
다시 방언을 구하는 기도를 청했을 때
어느새 강대상 앞에 청년들 2/3가 모였다.
성령님을 간절히 초청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강력한 방언을 받음과 동시에
이제 자신을 넘어선 기도. 그것은 북한과 탈레반에 억류된 우리 지체,
그리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강력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말 짧게 느껴진 그 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지났다.
그렇게 기도회를 마치고 간단한 다과를 먹고 숙소로 향했다.
결국 서울로 가는 막차는 놓쳤다.
하지만 청년 회장이 차 안에서 내게 나눠준 이야기들은 값진 것이었다.
늘 그저 그런 예배와 기도회였단다.
10년 전 교회 안에 선교단이 있을 때만 해도 기도가 뜨거웠는데
그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남은 건 형식적인 기도뿐이었단다.
그래서 이렇게 뜨거운 기도는 7년만이란다.
북한을 위한, 열방을 위한, 그 나라를 위한 기도 또한 처음이었단다.
청년들이 다과를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앞으로 기도회를 만들어 함께 그 나라를 꿈꾸길 원한다는 것.
전에는 결코 없었던 일들이
이 공동체 가운데 일어나려 한다는 것이다.
차를 내리기전 청년회장과 함께 기도했다.
오늘의 그 은혜가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통해 이루실 일들 중
가장 작은 것이 되게 해달라고.
이 작은 오늘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열어 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