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로 올라온 후부터
나는 직장에 다닌 일이 없다.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로
쉽게 말하면 백수의 삶을 바쁘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먹이시고 기르시는 것을
너무나 실감하며 살아왔다.
괴로운 시간이 아니었기에
그 시간을 광야 라고 부르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축복의 시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 속에 있는 작은 두려움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조바심 같은 것인데
내가 혹시나 굶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노력하고 손을 뻗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애쓰는 동작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내 작업의 저 편에 그 분의 나라가 향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바쁘게 움직여서 가시적인 결과를 탐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시간의 개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세상의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그 속에
편승하려는 내 마음을 보라는 것이다.
내 시간에 하나님을 구겨 넣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해답은 하나님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추어야 한다.
답을 알지만 행하기는 힘들다.
단 몇 초의 기다림도 마치 무위로 날리는 시간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의 인내에 결코 소모적인 시간은 없다.
간절함을 갖되 하나님의 시간 안에 내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오직 내 관점은 깨어지고
하나님의 관점이 나를 지배하기를 날마다 소원해야 한다.
결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
솔직히 어깨가 무겁다.
정작 직장에 나가 일하는 사람은 아내인데,
내가 큰 소득도 없이 바쁜 척까지 해가며 생활한다는 것이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고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_ 딤후 3:12
과연 이 시대에 박해란 게 있을까?
하지만 성경은 말한다.
예수 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어쩌면 지금의 박해는 물질우상주의시대에서
역방향으로 사는 이들.
그들에게 향하는 조롱과 비웃음이 박해가 아닐까?
아간이 죽어 묻힌 곳 아골 골짜기는 탐심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성경은 망령된 일이라고 표현한다. (수 7:15)
망령되다는 말은 ‘네발라’ 라는 히브리말로,
동사로 쓰일 때는 남편 외의 다른 남자와 음행함을 뜻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쫓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간음이다. (골3:5)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같아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고,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발견하여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과 같다고..
그 밭을 사기 위해, 그 진주를 사기 위해
내 모든 소유를 파는 것..
그것은 결코 희생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천국을 누리는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