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2편 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나는 이 말이 얼마나 복된지를 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자신은 알지만
그 내면 속 더러움을 잘 알지 못한다.
사람의 깊은 내면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내 모든 허물을 주님께서 가려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이 땅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죄가 가리어 진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몇 년 전인가?
버스 안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혹시 내가 알아야 할 죄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참, 당돌한 기도지만 하나님은 다음 날 알게 하셨다.
그 날 하루, 눈물로 바닥을 쓸고 다녔던 것 같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라고 불렀던 찬양가사를
차마 부끄러워 입으로 꺼내지를 못해서 웅웅거리며 울기만 했다.
하나님이 내 속에 있는 더러움을 하나만 꺼내어도
내 영혼은 몸을 가누지도, 숨 쉬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서야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볼 수 있게 된다.
주님의 보혈이 없으면 나는 하루를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 두 사람을 비유하며 말씀하셨다.
죄 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자이다.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은 죄인을 구하러 왔다.
아.. 나는 너무나 큰 죄인이고,
나는 너무나 큰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은 늘 동일한 사랑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상대적인 사랑이다.
곧, 수혜자의 자기인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의로운 자는 그 보혈의 값이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죄인이다.
그것을 성령님이 알게 하셨을 때
보혈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임을 자백하게 하셨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을 때 보혈의 공로가 어떤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를 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정 보혈의 은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자라면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아.. 그 은혜속에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