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분기점

우리는 손익분기점에 다다르면 손발이 떨린다.
내가 가진 것에 막상 손해가 생기면 마음이 닫혀 버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손익분기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주님께 일만달란트
_인생동안 갚지 못할 은혜의 빚을 진 자일 뿐이다.

주님이 이미 내 손에 쥐어 준 것은
내 인생의 본전이라 생각하기에 잃는 것이 두렵다.
앞으로 주님이 내게 주실 것은
주님의 것이지만 (아직 내 손에 오지도 않았기에)
이미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것, (주님의 것이 아니라)바로 내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고난중에

고난중에 그것을 피하는게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과 나를 발견해야 한다.
우리 인생가운데 슬픔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
그래서 더욱 그 날을 고대하고 또 고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선순위

내가 주를 위해 산다고 할 때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내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삼손의 힘은 그 머리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다.
방법론으로 접근하려 들지마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의 어떠하심을 나타내시고,
기도를 통해 오늘 내가 살아갈 기름을 부으신다.
그 기름이 또한 나를 가르친다.

겸손한 중에

성경 전반에 수많은 전쟁이 있고,
수많은 풀어야 할 난관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일관되게 그것을 푸는 열쇠는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라 말씀하신다. (신28:7)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걸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가리키는 길이 있다.
그 길로만 걸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맹세하신대로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신28:9)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수많은 물음 앞에서 답을 아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이다.

하나님은 내게 지혜를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인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마치 물건이 주어지듯,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마치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나면
원주인은 내게 아무 효력을 못 미치는 그런 모양이 아니다.
모든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지혜가 있어도 지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질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지혜를 구하는데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데도 주님의 마음을 물어야 한다.
겸손한 중에, 조용한 중에, 은밀한 중에
그 지혜를 사용하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주권이 지금 내 인생 가운데서도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의 모든 질문은 헛되게 된다.

하나님이 실제로 내 삶 가운데 드러나시면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과 질문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구름이 지나면

늘 그 자리지만
구름이 지나고
바람이 불면
마치 다른 곳에 서있는 듯
내 마음도 흘러간다.

전쟁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전쟁 / 신20:10-20>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당시의 역사적인 정황들을
현재의 우리 삶의 모습과 1차원적으로 이어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오늘의 말씀처럼 이해되지 않거나 적용하기에 힘든 내용들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근동지방의 전쟁에서는
군인들에게 특별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뒤 얻는 전리품들이 그들의 임금이 될 때가 많습니다.
또한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전쟁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너무나 참혹하며, 실제적입니다.
누군가를,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항이 있습니다.
서로가 총을 겨눈 채 멋있는 대사를 읇조리는 것은
느와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입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상대는 우리를 우는 사자처럼 집어삼키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대적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화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 가운데서  
스스로를 보면 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해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모습은  
상당히 의외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 뒤, 계속 광야를 맴돌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도, 군사적 전략들도, 군사무기도 가진 게 없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마치 강대국인양 취급하고 있습니다.
적군을 둘러싸서 포위하고 공격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 ‘하나님이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셨으니'(신20:13-새번역)
전쟁에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전쟁은 의미도, 승산도, 이유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서의 전쟁과 그 밖의 전쟁.
기업의 땅에서 주신 전쟁에서는  
하나님은 그곳에서 진멸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특별한 진멸법인 ‘헤렘’을 말합니다.
이 곳에서의 전쟁은 화평을 청하지도 말고
하나님은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멸하라는  
이해하기 힘든 명령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죄의 심판입니다.
역사의 최종에 있을 심판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나안 민족들의 극심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죄의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신20:18)
죄에 대해, 나를 물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단호해야 합니다.
사람은 너무나 죄에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내가 나를 죄로 부터 지킬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넘어지기 쉬운 교만인지요..

하나님은 전쟁의 도구로 쓰일, 혹은 엄폐물로 쓰일 수 있는
나무에 대해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목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20:19-20)
우리는 인류의 진보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너무나 많은 자연을 희생시켰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주신 영역들을 제대로 지키질 못하고 있네요..

믿음의 행동

밭이나 포도원에서 수확할 때 가난한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소유이지만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신다고 말하고 있다. (신24:19)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그렇다면 믿어라.
하나님이 갚으신다.
신뢰하라.
언젠가 직장을 다닐 때의 일이다.
내가 원했던 월급보다 얼마를 더 받게 되었을 때 일주일을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는 그 초과분을 마치 내 것이 아닌양 사용하기로 했다.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고백을 하는 믿음의 순종을 그렇게 나타내기로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그 일이 결국 내 인생을 깊이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나님의 인생수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축복을 원한다면 흘려 보내라.
그래야만 하나님이 채우신다.
복 주신다면 그것을 흘려 보내겠습니다. 가 아니라
먼저 믿음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자판기가 아니다.
이조차도 방법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찬송하여 치유의 경험을 한다는 말을 듣고
치유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게 아니라
찬송하기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찬송하고
치유는 그 선물이다.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시지 기계적인 방법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삼상 15:22)

베네치아

아무도 없는 거리
멈춰진 시간 속에 내 호흡만이 가득했다..
– venez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