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온유가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빠는 1억을 준다고 가정하면 똥을 먹을 수 있어요?”
“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낮에 친구들과 나누었던 주제였는데
아빠의 생각지 못했던 대답에 아이가 조금 놀란 눈치입니다.
그래서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냥 이요셉이었다면 먹지 않았겠지.
내가 똥을 왜 먹냐.
그런데 아빠 이요셉이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지.
아빠는 자신만 생각하면 안되는 사람이니까
그러면 아마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한 개인으로 살아갈 때는 싫으면 거절하고
부담스러우면 물러설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지켜주고 책임져야 할 옷을 입게 되면
거절할 수 있지만 거절하지 않고
물러설 수 있지만 물러서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차원에서 이와 같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예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할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온유가 추가로 질문했습니다.
“그럼 소명이 똥도 먹을 수 있겠네요?”
주제가 강력해서 왠만하면 이 주제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합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소명이가 시큰둥하게 답했습니다.
“나는 설산데..”
악! 생각지도 못한 소명이의 대답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오늘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주님이 입히시는 옷을 입고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