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구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어려운 부분에 금전적 도움을 주는 것이 지혜인가에 대해.
사실, 이 부분에 동의한다.
혹시라도 그들의 배고픔이 거짓일지라도
그 진정성까지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은 내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셨다.
그들을 안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눈물 흘릴 때
온전케 하실 거라는 믿음을 주셨다.
마치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듯
그들을 일으킬 것이고 기적을 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하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내가 이 믿음을 가지고 통로의 역할을 순종한다면
내 안에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 꿈이 구제에 대한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성전 미문의 (나면서 못 걷게 된)구걸하는 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주목했다.
구걸하는 이는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지만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성전 미문의 구걸하는 이는 뛰어 서서 걸으며
걷기도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성전의 아름다운 문아래 있던 보잘 것 없어 보이던
그가 이제는 (성령의 거하시는)성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은과 금을 얻을까 바라보는 이에게
내가 품어야 할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단, 이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것으로
그만이면 안 된다.- 막7:11)
다음 날 지하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 가슴은 마구 고동쳤다.
“오늘 내가 안고 기도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버지는 꿈속에서 귀여운 아이들을 보여주셨지만,
나는 더 확장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갈급한 영혼, 그 누군가를 안고 눈물로 기도할 때,
공기보다 더한 밀도로 주위를 가득 채울 당신의 임재 속에
아버지는 방긋 웃으시겠지요.
아버지가 주신 마음을 순종하여 드리고 싶어요.
믿음을 통해 순종을 이끌어 내고
순종을 통해 아버지를 알아가겠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