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우리 집으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며칠 전, 미장원에서 머리 자르며 원장님과 잠시 말씀을 나누었는데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모처럼의 휴일날, 가게 문을 닫고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를 따라 함께 온 손님까지 모두 다섯 명.
기대하는 눈빛들 앞에 당황했다.
차라리 기대 없이 본 영화가 더 재밌지 않은가.
하지만 은혜를 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빈자리를 당신의 영광으로 채우신다.
오늘따라 아내가 유난히 몸이 안 좋은 듯해서
말씀과 기도 후에 양해를 구하고 일찍 자리를 파했다.
요즘 시기(임신 4~6주)는 원래 피곤하다고 전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마음에 ‘원래’라는 말은 내 사전에서 지워야 한다 하셨다.
찾아 온 손님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틀과 고집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라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위에 우리를 세워야 한다. 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그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다. – 고후10:5,6
그런데, 내가 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실수하기 쉬운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라고 속이는 세상의 지식들이다.
그 앞에 굴복해서 당연하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주신 그 권세로
돌파해 가는 것이다. – 우리의 유익이 아니라 그 분의 영광을 위해 구할 것이다.
이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사단의 묶임 속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니, 그것 이상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픔을 통해 누군가를 길러낼 수 있다.
아프지 않으면 피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묶이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 모든 견고한 진은 무너진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집단과 나라로 이 일이 번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의 틀, 그 한계를 벗어버리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삶.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가 왕처럼 살기를 원하신다.
주신 권세로 이 땅의 모든 묶임과 저주가
이미 십자가로 끊어졌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마귀는 비이성적이라 비아냥거릴지 모르겠지만..
마귀가 비이성적인 존재이지 않은가
그 존재를 눈치 챘으면 이미 반 이상 돌파한 거다.)
위의 글은 그날 밤에 쓴 일기다.
다음 날, 미장원 원장님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그들은 우리 집을 나와서 다시 2차 모임을 가졌단다.
그 속에서 나누었던 기적 같은 일들을 메일로 보내왔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가족의 자살과 음행, 여러 아픔들..
각자가 속으로 얼마나 아파했던 사람들이었는지.
그동안 흑암의 세력들에게 거세게 묶였던 이들이었지만
다시금 아버지의 사랑과 온전하심에
새로운 계약을 붙들고 말씀을 살아내자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어진 후, 자신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다.
아. 아.. 주님의 기름 부으심이 이렇게 흘러간다.
메일을 받기 전까지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우리 집에 이렇게 찾아오는 것들이 일상이 돼 버렸기에
그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메일을 읽으며 회개했다.
날마다 하나님 하실 일에 대해 기대하지 않은 그것을..
우리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큰 일을 성실히 이루시는데,
가시적인 무언가가 없다고 무감각해서는 안 되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내가 만나는 이들이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어쩌면,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른 뼈가 있을 텐데
몇 십년간 방치해 두었던, 희망 없어 보이는 그 뼈들에게도
하나님 하실 일에 대한 기대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바짝 말라버린 무덤에서 하나님의 군대.
어쩌면 더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가 일어설 것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아군과 적군의 치열한 교전 중에
아르곤과 그를 따르는 마른 뼈들이 아군을 도와 승리로 이끌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