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가 되면 이슬람 사원의 스피커로 아랍인들의 기도가 울린다.
모슬렘은 천국에 가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하루에 다섯 번씩 정해진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긴장감에 그 소리에 맞서 깨어나 기도하게 된다.
이렇게 한국을 벗어나 보면
수많은 갈등과 투쟁과 격렬한 싸움이 눈에 , 그리고 귀에 들려 온다.
다시 해가 뜨면
유대인들이 토라를 읽는 소리와, 모스크의 스피커로 들리는 기도소리
그리스도인들의 찬양소리가 한데 얽히는 진귀한 광경을 만나게 된다.
유대교와 이슬람과 기독교의 성지가 바로 예루살렘이며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등의 발원지도 이 곳 중동이다.
이 곳이 수 많은 종교의 발원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계획하신 역사의 마지막과 모든 영적 기원을 배제한 채
단순하게만 생각해 보면 – 광야 때문이 아닐까?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가 귀한 이 곳 죽음이 인접한 곳에서 나를 살게 하시는 분.
실존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절대자를 찾는 인간의 소원 때문은 아닐까? (행17:28, 롬1:19)
세겜 땅으로 가는 길이다.
세겜은 현재 ‘나불루스’라는 지명으로 불려진다.
이 곳은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현재는 아랍인들의 주요 거주지로 분쟁위험이 있어서 곳곳에 이스라엘군인들의 경비초소가 있다.
아랍인들로 둘러싸인 이 곳에 유대인 정착촌이 있었고
길목에서 한국에서 뵌 적이 있는 에브라임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한국에서 온 우리를 안내해 주기 위해 70세의 어른이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것이다.
목사님의 인도를 따라 검문소를 넘어 산 꼭대기까지 올랐다.
어쩌면 한국인으로써는 처음 가는 곳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산 위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반겼고, 탁 트인 경관이 펼쳐졌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많은 풍경들은
성경의 수 많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시대와 시대를 잇는 지점마다 세겜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너편으로 세겜을 사이에 두고 에발산과 그리심산이 있다.
그 사이 도시인 세겜을 중심으로 해서 축복과 저주가 나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이 곳을 배경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에브라임 목사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맞은편 그리심산이라 여겨지는 산에서 얼마전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오래된 고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는데
여호수아의 기념터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주 보이는 산이 에발산이고(수8:30)
바로 우리가 올라 있는 이 곳이 그리심산이다.
왜냐하면 마주보고 축복과 저주를 화답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27:12-14)
축복이 선포되어야 하는 이 곳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열방에 대한 축복을 선포했다.
성경에는 수많은 축복과 저주의 역사들이 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시작으로 양과 염소의 심판까지.
그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포해야 하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너희는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왕상 18:21)
갈등과 반목이 가득한 이 시대,
이 곳에 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함께 부르짖었다.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막8:4)
모인 큰 무리를 향해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향한 제자들의 말이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도 언젠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물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민11:13)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민11:21-22)
이에 하나님은 엄중하게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 보리라” (민11:23)
이 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막은 애굽을 치셨던 손이며
홍해를 갈랐던 손이며 이스라엘의 갈 길을 가리켰던 손이다.!!
그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더 능력 있으신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우리의 죽음과 삶을 포함한 전 우주의 주인이시다.
‘종교백화점과 같은 이 곳에 과연 평화가 선포되어질 수 있을까요?’
‘세겜과 같이 극렬한 대립이 있는 이 곳에도 진정한 샬롬이 임할 수 있을까요?’
나도 이들처럼 답이 안 나오는 상황속에서 주님께 계속 질문했다.
그 질문에 하나님은 내게도 동일하게 대답하신다.
“나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보리라.” (민11:23)
여기서 ‘이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앗타’라는 단어인데
지금! 즉시! 임박하여!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곧, 하나님의 즉각적인 일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