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를 드리고 창규형을 만났다.
멀리 독산동에서 이 곳 노량진까지 예배드리러 온 것이다.
진관형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며 나눔을 하다가
내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벌써 6년 전 이야기다.
난 세상이 두려웠다.
그 때 만났던 말씀이 가나인 정탐꾼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 앞에 나는 메뚜기같이 작고 초라한 존재 같지만
세상과 나를 비교할 게 아니라
세상과 우리 아버지를 비교해야 한다.
우리 아버지 앞에 세상은 밥이다.
오늘은 진관형의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병원으로 가는 마을버스 안…
햇살이 눈부셨다.
햇살 아래 일렁이는 나뭇가지들이
우리에게 반갑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웃으시며 우릴 맞으셨다.
선생님께 물었다.
“진관형이 기도만 하면 눈물이 흐른다는데
이것도 병인가요?”
의사 선생님도 이 부흥에 동참했으니
그 은혜를 같이 나누고 싶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렇게 되었으니, 병이 아니에요.
너무 좋은 거지요.”
참고 참아도 흐르는 눈물…
“오늘 새벽에는
정말 작정을 하고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
첫 번째 찬양까지는 어떻게 참았는데
또 쏟아지는 눈물.
어쩔 수 없는 눈물…
하나님도 참…”
불과 얼마 전
형이 토하고 아플 때,
함께 드린 예배 중에 기도제목을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앞날에 대한 막막함…”
그 두려움을 나도 잘 안다.
오늘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눈 이야기이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오늘 형에게 기도제목을 물었을 때,
그는 더 이상 두렵거나 막막하지 않다고 했다.
“이제 두렵지 않아요.
다만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고 싶어요.
그 안에 거하고 싶어요…”
어제는 예배 가운데 진관형이 간증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동생을 울리냐며 웃어보지만
진관형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 안에 소망을 품고 살계 하시는
그 사랑이 나를 울린다.
“제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4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기 때문에
새어머니께서 저를 고등학교 때까지 보살펴 주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새어머니께서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셨기에
저도 주일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회 수련회에서 성령님을 경험하며 학생회 부회장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대학입시에 낙방하고 재수하면서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 15년 만에 드린 새벽예배에서
전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버지 나 이제야 돌아 왔어요.” 라는 말만 했습니다.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지만
잊고 있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찾게 된 후
내 삶과 그 전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된 내 삶의 이야기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날 보다 더욱 간증거리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저는 남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가 아닌 남을 위해 아버지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저는 몰라도 아버지는 아시니까 위로하시고 치유해 주시라고 말입니다.
쓰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아버지의 사랑,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 감당치 못할 그 큰 사랑으로 우리의 영혼이 만져지기를 바랍니다.
잃었던 생명, 내 삶을 찾아 매일 매일 날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