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안을 두고 원망하며 ‘저주받은 가문’이라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처럼 성경에도 저주 받은 땅이 있다.
여리고가 그런 땅이다.
여리고는 여호수아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벌일 때 가장 먼저 맞닥드린 곳이다.
잘 아는 것처럼 성을 칠일간 침묵하며 돌고 마지막 날 외쳤을 때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상징적으로 이 곳을 저주했다.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을 잃으리라 (수6:26)
그리고 수 백년의 시간이 흘러 아합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을 때
히엘은 여리고를 건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성읍의 터는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말한 것처럼
그 터를 쌓을 때에 히엘의 맏아들 아비람이 죽게 되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울만큼 신실하시다.
히엘의 두 아들은 이렇게 죽게 되었다.(왕상16:34)
말 그대로 여리고는 저주 받은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 엘리사가 선지자로써 막 사역을 시작했을 때
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를 찾아왔다.
“이 곳의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해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 (왕하 2:19)
여리고 성읍의 터는 아름답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좋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단순했다.
빛이 있으면 일했고, 뜨거우면 쉬었으며, 해가 저물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단순함 속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오늘 먹을 양식이었다.
그 보다 더욱 간절한 것이 마실 물일텐데
여리고의 물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물이 좋지 못해서
여리고 지방의 농사는 잘 되지 않았고
과일이나 곡식이 결실 전에 모두 떨어지는 병이 돌아서
그 땅은 더이상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떨어진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솨클’이라는 단어는
‘조산하다, 불임이 되게 하다, 유산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는 그저 과일이나 곡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축과 여인들이 그 물로 인해 낙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왕하2:21)
는 엘리사의 기도를 살펴보아도 물이 좋지 않음으로
살아 있는 것들이 죽음에 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지질학적 탐사와 수질 탐사를 통해 실제로 이 지역의
일부 샘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큰 단층 계곡 안의 여러 요인들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방사능의 영향으로 불임이나 여러 요인이 생겼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
저주 받은 여리고와 같아서
한 번 저주 받은 사람의 인생, 가족, 부모, 형제..
한 번 저주 받은 민족
먹지 못하는 소산물을 가진 것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이제는 체념해야 하는 것인가?
희망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한 남자 아이는 어릴적 동네 형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후로 자신의 인생을 비관해서
형과 누나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 용돈을 벌며 살아 가고 있다.
언제 죽어도 좋을 인생이라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이미 저주 받은 내 인생이기에 목숨을 놓아버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 뿐이겠는가?
수 많은 인생의 눈물들속에 저주 섞인 한숨이 새어나온다.
엘리사는 이 저주 받은 수원지에 소금을 뿌렸다.
성경에서 소금은 여러 가지 역할로 말하고 있는데
음식물의 양념이나 소독제 뿐 아니라
제물을 정결케 하는 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과 은혜의 증표로서
소금의 언약이란 말까지도 사용하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증표인 소금을 가지고
엘리사는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던지며
여호와의 말씀으로 선포했을 때 그 땅은 놀랍게도 치유되었다.
죽은 땅, 긴 시간동안 저주 받았던 땅이 치유된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내 기도제목이었다.
몇 년전 아프리카 차드에 촬영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겨울이었지만 50도라는 살인적인 더위가 나를 덮었다.
작렬하는 태양빛 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물’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병든 물로 인해 생긴 수인성 질병은
아이들의 배를 기형적으로 만들었고, 온 몸에 심각한 피부병을 앓게 했다.
이 병든 물이라도 구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어 물을 긷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내가 촬영했던 아이는 이런 이유로 죽어가고 있었고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
맨처음 그 땅에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은 극심한 피로때문에 온 몸에 난 종기로 고생하셨다.
나는 선교사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고 거짓말 같이 하루밤 사이에 치유되었다.
그 일이 원인이 되어 우리는 매일같이 함께 기도했다.
촬영을 위해 그 땅에 갔지만 마치 기도가 원래의 목적이었던 것처럼
나는 날마다 그 분을 위해 기도했다.
나는 진정으로 병든 아이들에게 손을 대고 기도하고 싶었고,
병든 우물에 손을 넣고 기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 땅에 남아 있는 분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이 나타나길 원해서다.
떠날 내가 아니라
그 곳을 지킬 선교사님에게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부어지길 기도했다.
엘리사가 뿌린 그 소금이 저주의 근원에 던져졌을 때
생명을 위협하는 수원지가 고쳐진 것처럼
이 땅을 묶고 있는 흑암의 세력이, 사망의 세력이 완전히 끊어지기를 날마다 기도했다.
지금 여리고에 샘솟고 있는 샘의 이름은
‘엘리사의 샘’이다.
저주가 가득한 이 곳이 여리고 평원의 가장 큰 샘이 된 것이다.
초당 76미터의 물을 뿜어내는 생명의 젖줄로
주변의 황량함과 달리 이 곳을 녹지대를 이룬 오아시스로 만들었다.
그 물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1급수에만 살 수 있다는 다슬기들이 가득 하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죽은 땅, 긴 시간동안 저주 받았던 땅이 치유되었고
그것이 오늘에 까지 이른 것이다. (왕상 2:22)
besi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