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주를 떠나 우루무치로 향하는 스물네 시간 동안의 기차여정은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다 오랜만에 갖게 된 쉼과 침묵의 시간이었다.
여전히 란주에서 보았던 할아버지의 죽음이 잊히지 않았다.
원래 란주는 올 계획이 없었던 땅이다.
이번 중국선교에 대한 계획이 출국 전에 공안들에게 노출되는 바람에
급하게 변경된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백탑사를 앞에 두고 그저 울기만 했다.
죽음앞에.. 생명앞에..
황하가 흐르는 물줄기 옆으로 가족들이, 연인들이 웃고 있었고,
방금 전에 있었던 죽음과 아무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황하는 중국대륙을 휘감고 있었다.
병원을 앞에 두고
죽어가는 영혼에게 그 누구도 손대지 않는 중국인들을 보고
환멸을 느꼈다.
결혼식차에 타고 있던 신부는 줄행랑치듯 다른 차로 바꿔 탔다.
아무도 이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
만지면 처음 손을 대는 순간 책임져야 한다.
“이 저주 받을 땅…”
원망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님이 책망하셨다.
겨우 이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벌써 저주 하느냐.
내 힘으로는 그 아무도 사랑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보이신 그 사랑으로,
주신 사랑으로 사랑하라. 말씀하신다.
우리 또한 생명 앞에 구경꾼일 뿐이었다.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지만
피 흘림에 대해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님은 파수꾼인 우리가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그 죄 값을 우리에게 물게 하겠다 하신다. (겔 33: 6)
이 죽음 앞에, 이 피 흘림에 대해 알리바이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빚진 자다.
새벽 흙빛 속에서 해가 떠올랐다.
해 뜨는 풍경은 우회하는 기차 뒤로
금세 돌아나갔지만 중국에서 처음 만나는 일출이다.
부활절 아침이 이렇게 밝았다.
음부의 어둠을 깨고 부활의 해가 돋았다.
기차 안에 함께 모여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데
물건을 파는 중국인 ‘매영’이라는 자매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미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를 전했을 때 기쁨으로 영접기도까지 하게 되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16:21)
할렐루야!!
한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종일 근심하였으나,
부활의 아침,
또 한 생명의 구원을 통해
천국의 기쁨을 맛보았도다…


